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고 1924년, 마흔한 살의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친애하는 막스, 마지막 부탁이네. 내 유품에서 일기, 원고, 편지, 스케치 등 발견되는 것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 줘.”
하지만 브로트는 카프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카프카가 생전에 미완성한 장편소설 세 개를 발표했다. <소송(심판)>, <성>, <실종자(아메리카)> 등이다. 카프카는 브로트를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브로트가 아니었다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걸작이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카프카 서거 100주기를 맞아 출간된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는 세 유작 가운데 하나인 <실종자>를 비롯해 카프카의 단편 소설,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 등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거장 소설가와 시인의 유고작을 모아 출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카프카뿐 아니라 한국 서정시의 대가 박목월 시인, 라틴아메리카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의 유작이 연달아 나왔다. 작가 자신이 발표를 원하지 않았던 작품도 포함돼 있어 이를 바라보는 문학계의 시선이 엇갈린다.
지난달 전 세계 동시 출간된 마르케스의 소설 <8월에 만나요>는 앞서 2014년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소설은 매년 8월 어머니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나는 중년 여성이 남편과 가족으로부터 잠시 해방된 순례길에서 매번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내용이다.
마르케스는 1999년부터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소설의 일부가 콜롬비아의 주간지에 실리기도 했지만, 작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전체 작품은 공개되지 않았다. 마르케스는 사실 이 사이에 치매에 걸렸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기억력이 점차 흐려지는 상황에서 쉽지 않았다.
작품의 질을 의심한 마르케스는 아들에게 “소설을 파기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마르케스 사망 뒤 소설의 여러 초안과 메모 등은 미국 텍사스대 해리랜섬센터에 있는 그의 기록 보관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몇 년 후 작품을 다시 읽어본 아들들에 의해 출판이 결정됐다.
보르헤스의 유고 강연집도 출간됐다. 보르헤스는 <픽션들> 등으로 20세기 문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지성으로 꼽힌다. 그의 사후 30년이 지난 2016년 출간된 유고 강연집 <탱고>는 보르헤스가 1965년 10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에 대해 한 강연을 녹취한 테이프가 뒤늦게 발견돼 강연집으로 묶여 나왔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출간됐다.
작가 사후에 작가의 뜻에 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거장의 작품을 하나라도 더 볼 수 있다는 점은 독자들이 반길 만한 부분이다. 지난달 공개된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 시 166편도 시인이 남긴 노트에 적힌 시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새로운 작품들은 기존에 시인이 목가적인 풍경이나 가족에 대한 시를 주로 남긴 것과 달리 6·25전쟁의 참혹함이나 해방의 기쁨 등 시대상을 기록한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학계에선 “현대시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일부 유작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일부 상속인은 지식재산을 추가로 확보하려고 완성되지 않았거나 질 낮은 작품을 공개해 작가의 유산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르케스의 <8월에 만나요> 출간에 대해 “일부 독자와 비평가는 마르케스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작품을 발표하기로 한 선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