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한 달 동안 0.3%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원·엔 환율이 연중 최저치까지 떨어지며 엔화를 싼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엔화 투자는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이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에도 엔화 가치가 약세를 면치 못하자 ‘엔테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태도가 신중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조2160억엔으로 전월(1조2129억엔) 대비 0.3%(31억엔)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이긴 하지만 1개월 전인 지난 2월(5.5%)에 비해 증가율이 둔화됐다.
지난달은 원·엔 환율이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시기였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지난달 21일 100엔당 875원85전으로, 작년 11월 28일(872원79전) 이후 약 4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종전에는 원·엔환율이 100엔당 900원 밑으로 하락하면 향후 엔화 가치 상승을 기대한 투자 자금이 유입돼 엔화예금 잔액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5979억엔에 불과했던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11월(1조1971억엔)까지 7개월 연속 증가했다.
예년과 달리 지난 3월엔 원·엔 환율 하락에도 엔화예금 증가세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일본은행의 소극적인 통화정책 전환 움직임에 투자자들이 실망한 점이 이유로 꼽힌다. 당초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엔화 가치의 본격적인 상승을 불러올 요인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행이 단기 기준금리를 -0.1%에서 0~0.1%로 인상한 지난달 19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891원39전에서 21일 875원85전으로 급락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17년 만에 올리긴 했지만, 대규모 국채 매입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는 등 통화정책을 크게 전환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원·엔 환율의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엔테크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일본의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매우 점진적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원·엔 환율이 올해 2분기까지는 890원대 안팎에서 횡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문위원도 “원·엔 환율이 앞으로 많이 올라도 올 연말까지 910~920원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