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1일 09:4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프로야구단 운영은 흔히 '돈 버는 사업'이 아니라고 한다. 야구단의 주 수입원인 입장권 판매로는 스타 선수들의 몸값과 선수단 운영비를 대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대부분 사회공헌의 일환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야구단을 생각한다. 다른 계열사와 달리 야구단은 적자를 내도 별다른 문책도 없다. 이런 야구판에서 "아구단도 비즈니스로 접근하겠다"며 변화에 시동을 건 곳이 있다. 지난해 깜짝 실적을 낸 SSG랜더스(법인명 신세계야구단)가 주인공이다.
10개 구단 중 돋보이는 실적 낸 SSG랜더스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SG랜더스는 지난해 5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552억원) 대비 6.0% 증가했다. 2022년 167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지만 지난해엔 4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22년엔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김광현 선수를 비롯해 스타 선수들과 다년 계약을 맺은 탓에 일회성 비용 지출이 커 이례적으로 큰 적자를 내긴 했지만 이런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10개 구단 중 지난해 가장 두드러진 실적 개선세를 보였다.
다른 구단의 실적을 보면 SSG랜더스의 성과가 더 돋보인다.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 삼성라이온즈와 키움히어로즈를 제외한 8개 구단 중 절반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한 LG트윈스(LG스포츠)는 전체 구단 중 가장 많은 매출인 821억원을 기록했지만 16억원의 적자를 냈다. LG트윈스는 입장료와 광고, 사업수입 외에도 LG브랜드를 홍보한 대가로 139억원의 사실상 모기업 지원금을 받아 이를 매출로 잡았지만 선수단 운영비가 전년 대비 32.8% 늘어난 502억원에 달해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KT위즈(케이티스포츠)는 영업적자가 109억원에 달했다. KT위즈는 지난해 663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선수단 운영비로만 639억원을 지출했다. 매출의 96% 이상이 선수단을 운영하는 비용으로 나가 사실상 흑자를 내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KT위즈는 지난해에만 12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손실이 쌓이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된 KT위즈는 지난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15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수혈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 기준 KT위즈의 자본잠식률은 84.8%로 증자가 없었다면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안일한 퍼주기식 구단 운영 근절 신세계그룹은 2021년 SSG랜더스의 전신인 SK와이번스를 인수한 직후 구단 경영 방침을 완전히 바꿨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야구단 인수를 추진할 때부터 직원들에게 "야구단도 비즈니스로 접근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구단이라는 사업 자체가 구조적으로 흑자를 내긴 어려운 사업이지만 퍼주기식으로 안일하게 구단을 운영하진 않겠다는 의미였다.
신세계는 SSG랜더스를 인수한 뒤 우선 야구단에 광고비 명목으로 집행하는 지원금 관행부터 뜯어고쳤다. SK와이번스 시절에는 야구단이 한해 장사를 해서 적자를 많이 내면 모기업이 광고비를 늘리고, 적자가 적으면 광고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야구단 재무 사정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했다. 야구단 입장에선 적자를 내도 손을 벌릴 곳이 있으니 실적 개선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신세계 인수 뒤로는 이런 관행을 없앴다. 야구단과 모기업과의 거래에서도 광고 단가를 정하고, 이를 따랐다. 모기업의 무조건적인 지원이 약속되지 않는 만큼 모기업 외 광고 수주를 늘리는 등 야구단은 자생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적 개선을 위해 선수단 운영비 등 비용 관리에도 더 신경을 썼다.
SSG랜더스는 입장권 수입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팬들을 위해 무작정 티켓 가격을 올리는 방법 대신 특화석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바비큐존,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그린존, 테이블을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석 등이 대표적인 특화석이다. 일반 좌석보단 가격이 비싸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받는 만큼 관객들도 특화석에 흔쾌히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올해도 흑자가 목표"SSG랜더스가 호실적을 낸 근본적인 이유는 야구단이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첫해 6위를 했던 SSG랜더스는 창단 2년 만인 2022년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했다. 지난해엔 아쉽게 3위에 그쳤지만 관중들은 열광했다. 창단 첫 100만 관중 돌파에 성공했다. 100만 관중은 인기 구단을 구별하는 척도로 쓰인다.
전병일 SSG랜더스 경영지원팀장은 "결국 관중들이 구장을 많이 찾아야 입장권 수입도, 광고 수입도 늘어난다"며 "비즈니스 마인드를 밑바탕으로 구단의 좋은 성적과 마케팅 활동 등이 결합돼 좋은 실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SSG랜더스는 올해 매출 600억원 문턱을 넘어서고, 지난해에 이어 흑자를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단 성적과 날씨, 주말 홈경기 대진 등에 따라 손익에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적자를 내진 않겠다는 게 전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미션이다.
업계에선 재무제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마케팅 효과를 더하면 신세계그룹이 SSG랜더스를 운영하며 얻은 성과는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매년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 맞춰 야구단 이름을 딴 할인 행사인 '랜더스데이'를 연다. 그룹 계열사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로 올해 행사 규모는 약 1조원에 달했다.
본업인 유통업과 야구를 접목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서도 나아가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돔구장과 복합쇼핑몰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스포츠·문화·엔터테인먼트 복합 공간 '스타필드 청라'를 2027년 인천에 열 계획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