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달린 사과는 잘해야 잼 공장으로 가겠네요.”
지난 3일 충주 신니면 사과 농장에서 만난 김승섭 씨(71)는 ‘올해 작황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자 나무에 힘없이 달려있는 사과꽃을 가리키며 한숨부터 쉬었다. 김 씨는 “작년에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올해 사과꽃들이 대체로 형편없다"며 “시장에 내다 팔기 어려운 사과들만 잔뜩 나올 것 같다”고 걱정했다.
냉해, 우박 등 이상기후로 지난해 농사를 망쳤던 사과 농가들이 올해는 강우량 때문에 흉작을 거둘까봐 안절부절하고 있다. 정부가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농가들은 올해 사과 생산량이 전례없는 흉작을 거뒀던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과값 안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씨는 충주에서 1160㎡ 규모로 중소형 사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과수원을 들어가보니 줄지어 늘어선 사과 나무엔 가느다란 가지 끝에 사과꽃들이 가냘프게 매달려 있었다. 가지마다 핀 꽃이 평년의 절반 수준(8개)이라는 게 김 씨의 전언.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톡하고 떨어질 것 같은 꽃들도 많았다.
농민들은 보통 5~6월이 되면 적과(사과를 솎아내는 작업) 작업을 연달아 하면서 가지마다 10개 정도의 사과만 남긴다. 모든 사과를 그대로 두면 달걀보다 작은 사과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대로면 올해는 적과작업은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과꽃들이 너무 부실해 사과가 예년보다 적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농사가 이렇게 된 원인은 지난해 과도하게 쏟아진 비 때문이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사과 산지인 충북 충주의 지난해 강수량은 1661.6㎜로, 2011년(2073.3㎜) 이후 가장 많았다. 토양으로 흡수된 수분을 나무뿌리가 빨아들이면서 가지가 과도하게 성장하면서 꽃에 투입될 양분이 부족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1~3월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일조량마저 줄어들었다.
김 씨는 “가지를 쳐내 양분을 몰아줘도 모자란 상황이지만 올해는 나무들마다 가지를 하나씩 더 남겼다”며 “15년 동안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이렇게 가지를 많이 남긴 적은 처음”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어 “올해 사과 농사도 작년처럼 흉작일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사과 농가들은 올해도 작년처럼 사과 생산이 줄어들면서 도매가격이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폭등한 사과값을 낮추기 위해 대형 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남품 단가 등을 지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 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일선 농가들은 냉해예방제 보급 등을 제외하곤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씨는 “일년 내내 일한건 우리인데 정부 지원은 유통업체 위주로 이뤄지는 것 같아 뉴스를 볼 때마다 속이 탄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