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은 공직선거법에 따른 조치다. 이번 22대 총선에선 지난 4일부터 10일 오후 6시 투표 마감 때까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됐다.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걸 막자는 취지지만 온라인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선거법에 ‘여론조사 공표금지’ 항목이 추가된 것은 1958년이다. 그 땐 여론조사 자체가 금지됐다. 1992년 처음으로 여론조사가 법적으로 허용됐고 공표금지 기간은 28일이었다. 1994년에는 22일로 줄었고 지금처럼 6일로 공표 금지 기간이 정해진 것은 2005년부터다. 이때부터 20년째 6일 간의 '선거 블랙아웃' 기간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투표가 임박한 상황에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유권자들이 승산이 있는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주거나, 열세에 놓인 후보자 쪽에 표를 주게 되는 현상을 막자는 취지다. 또 특정 세력에 유리하도록 의도된 ‘가짜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걸 방지하려는 이유도 있다.
최근엔 6일 간의 깜깜이 기간이 SNS 등을 통해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요즘엔 맞지 않는 제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게 오히려 가짜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20대 총선 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2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담아 선거법 개정 의견을 냈지만 실제 개정이 되진 않았다.
주요 국가 중 상당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두지 않고 있다. 세계여론조사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133개국 중 깜깜이 기간을 두지 않는 나라는 32%였다. 미국·영국·독일·스웨덴·호주 등이 대표적이다.
공표 금지 조항이 있는 나라들의 평균 금지 기간은 한국보다 짧은 4.5일이다.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멕시코, 아르헨티나, 인도, 파키스탄은 한국보다 짧다. 프랑스는 7일간의 공표 금지 기간을 뒀다가 2일로 단축했다. 스위스 언론사가 깜깜이 기간 프랑스 선거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프랑스는 선거 전날과 당일만 금지하는 것으로 기간을 줄였다.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볼리비아 등은 한국보다 기간이 길다. 튀니지는 150일, 카메룬은 90일, 온두라스와 볼리비아는 30일이다.
21대 국회에서도 공표 금지기간 폐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긴 했다. 선관위가 지난해 깜깜이 기간 폐지 의견을 냈고,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월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폐지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후 구체적인 논의는 국회에서 없었다.
일각에선 현역 의원들이 깜깜이 기간 폐지 논의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역 의원이 지역구 인지도가 높아 초반 기세가 좋고 막판에 경쟁자가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깜깜이 기간이 길면 유권자가 이같은 상황을 알기 힘들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유권자가 여론조사에 휩쓸릴까봐 6일이나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건 한국 유권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불확실한 정보가 SNS에 유통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더 많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