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05일 15:4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 시장 점유율 4위를 달리던 캐치패션이 지난달 돌연 서비스를 종료했다. 고질적인 적자 구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금 유치가 무산된 탓이다.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로 불리는 명품 플랫폼 '톱3' 업체도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 명품 열풍이 한풀 꺾인 데다 쿠팡이 한때 시가총액이 30조원에 달했던 세계 1위 명품 플랫폼 기업 파페치를 5억 달러(약 6500억원)에 인수하면서 명품 플랫폼 업체들의 몸값이 대폭 하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캐치패션, 지난달 사실상 영업 종료5일 패션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캐치패션(법인명 스마일벤처스)은 지난달 19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아직 홈페이지 문을 닫진 않았지만 고객센터를 폐쇄하는 등 사실상 영업을 종료했다. 캐치패션은 홈페이지 공시자항을 통해 "부득한 경영상의 사정으로 서비스 운영 정지를 결정했다"고 알렸다.
캐치패션은 한화갤러리아 출신 이우창 대표가 2019년 시작한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다. 경쟁사인 머트발은 병행수입과 구매대행업자들이 입점해 오픈마켓 방식으로 상품을 판매한 반면 캐치패션은 명품업체의 공식 유통사와 제휴해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식 유통사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만큼 가품 우려가 없다는 게 캐치패션의 장점이다.
캐치패션은 한국에 거센 명품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창립 2년 만에 누적 거래액은 800억원을 돌파했다. 자본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 투자금도 쓸어 담았다. 2021년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한 캐치패션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380억원에 달했다. 신한캐피탈과 SV인베스트먼트, DS자산운용, VIP자산운용 등이 주요 투자자다. 한화솔루션(당시 한화갤러리아)은 캐치패션 창업 초기 시드 투자를 해 현재 지분 17.69%를 보유하고 있다.
추가 투자 유치, 막판 결렬그러나 캐치패션의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케팅비를 쏟아부으며 소비자를 끌어모은 머트발에 밀렸다. 캐치패션도 연예인 조인성 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 머트발과의 경쟁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수그러들고,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명품 열기가 가라앉자 어려움은 가중됐다.
거래액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고, 수익성 개선을 등한시한 것도 결국 발목을 잡았다. 캐치패션은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2022년엔 4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적자는 69억원에 달했다. 순손실은 67억원을 기록했다.
코너에 몰린 캐치패션은 2022년 말부터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끝에 투자 유치 성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문제는 쿠팡이 지난해 12월 세계 1위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5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터졌다. 투자자들이 파페치와 비교하면 캐치패션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산정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캐치패션은 15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캐치패션은 투자 유치에 실패한 뒤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비스 종료를 택했다.
위기의 '머트발' 삼총사업계에선 머트발의 미래도 캐치패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22년 기준 머스트잇의 영업적자는 168억원에 달했다. 트렌비와 발란의 영업적자는 각각 208억원, 374억원을 기록했다.
위기에 처한 머트발은 지난해 합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회사를 하나로 합쳐 출혈 경쟁을 멈추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합병은 끝내 무산됐다.
머트발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추가 투자 유치 없이는 자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합병이 무산 뒤 지난해 말 발란이 투자 유치를 위해 주요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을 접촉했지만 아직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머스트잇은 2022년 6월, 트렌비는 같은해 9월 투자금을 유치한 게 마지막이다. 각사 기업가치는 마지막 투자 유치 시점 기준으로 머스트잇이 4500억원, 발란이 3000억원, 트렌비가 2800억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한 때 시총이 30조원에 달했던 세계 1위 명품 플랫폼 파페치의 경영권이 6500억원에 매각된 마당에 국내 명품 플랫폼이 수천억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며 "기존 투자자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추가 자금을 수혈하지 못해 문을 닫은 캐치패션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