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가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순매수액은 약 7조7000억엔(약 68조원)으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았다.
견인차는 영국, 중국, 한국 투자자들이다. 영국을 거쳐 중동에서 ‘오일 머니’도 가세했다. 세계 각국의 투자자가 엔저를 지렛대로 저렴한 일본 주식을 사들이는 모습이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지난 4일 발표한 투자부문별 매매동향에 따르면 2023년 해외투자자의 순매수액은 7조6906억엔으로 집계됐다. 3년 만의 순매수다.
순매수액은 금융 완화, 재정 확대, 성장 전략을 담은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3년(9조5387억엔)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일본 주식의 ‘큰손’은 유럽 투자자다. 일본 주가 상승에 탄력이 붙은 2023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유럽의 일본주(펀드 포함) 순매수액은 8조7038억엔으로, 해외 투자자 전체 순매수액의 90%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영국이다. 같은 기간 월평균 순매수액은 8231억엔으로, 2018년 4월~2023년 3월 월평균 순매수액이 74억엔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영국 자금의 배후에는 오일 머니가 있다. 런던은 1970년대부터 중동 각국의 자금을 세계에 분산 투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런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쿠웨이트 투자청(KIA) 등이 거점을 두고 있다.
오일 머니는 중국의 경기 불안에 따라 중국 주식 투자금 일부를 일본 주식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환율도 한몫하고 있다. 파운드화 대비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영국 투자자 눈에 일본 주식은 싸게 보일 수밖에 없다.
영국 다음은 홍콩이다. 월평균 매수액은 998억엔이었다. 홍콩의 뒤에는 중국 돈이 있다. 중국에선 위안화의 외화 환전이 제한돼 중국 부유층은 홍콩의 증권회사에 계좌를 개설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루트는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일본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한정돼 있는데, 지난 1월 여기에 개인 자금이 몰리면서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국인은 2023년 4월부터 12개월 연속으로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순매수액은 10억달러(약 1510억엔)에 달했다.
반면 미국 머니는 아직 일본 주식에 관심이 덜하다. 2023년 4월~2024년 1월 월평균 순매수액은 650억엔에 불과했다. 영국이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렴한 종목에 투자하는 ‘밸류 투자’에 적극적인 데 비해 미국은 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는 ‘그로스 투자’에 강점이 있다. 밸류주나 대형주의 기세가 강한 일본 증시에 흥미가 덜한 이유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