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수명에 맞춰진 사회…연금·복지시스템 모두 손봐야"

입력 2024-04-03 19:05
수정 2024-04-04 02:08
부산 크기 면적에 인구가 545만 명인 싱가포르에는 노화 연구 및 교육센터(CARE)를 비롯해 노화 연구소만 8곳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노화 연구의 중요성을 빠르게 인지한 덕분이다. 노화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싱가포르국립대(NUS) 건강장수센터, 노화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난양공대 릴리(LILY)센터, 노화 임상에 중점을 둔 싱가포르 북부병원 제리(GERI)센터 등이다. CARE는 이들 기관의 성과를 통합해 실제 정책에 적용하도록 돕는다.

싱가포르 노화 연구소들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부 과제에 함께 지원하거나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한다. 가령 ‘고령층을 위한 건강관리 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면 릴리센터에서 앱을 개발하고 CARE에서 앱 디자인에 필요한 사회적 요소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는 싱가포르 정부가 고령화 문제에 선제적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라훌 마홀타 듀크-NUS 의대 교수(CARE 부센터장·사진)는 “미국에서는 국립노화연구소(NIA)가 매년 6조원 규모의 노화 관련 연구자금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며 “싱가포르는 각 분야를 통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서로 다른 연구를 통합한 다학제적 접근을 하고 있다. 기술 혹은 정책적으로만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홀타 부센터장은 “기대수명 80세가 넘는 국가는 이미 사회 시스템이 뒤처진 상태”라며 “연금 시스템, 사회복지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수명이 20~30년 늘었는데 은퇴 시점과 기대수명 격차가 10년 이내일 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면서 괴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노화 연구만 중점적으로 하는 국책연구소가 아직 없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노화융합연구단을 운영하고 있고 일부 대학에서 연구단을 꾸렸지만 대부분 질병 중심의 기초연구에 국한돼 있다. 국내 한 노화 연구자는 “기초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약개발은 보건복지부 식으로 부처별 칸막이가 놓여 있어 통합 연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마홀타 부센터장은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 재교육을 받아 다시 직업을 갖는 게 보편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더 배우고 돌아온 사람은 직장에서 더 유연하고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