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통의동의 한 연습실. 18평 남짓의 이 공간에서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이 이끄는 프로젝트 앙상블 '울림과퍼짐'의 합주 리허설이 시작됐다.
언뜻보면 보통의 실내악과 비슷하지만 이들이 내는 음의 높이는 일반 실내악단보다 미묘하게 낮다.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연주에 가깝게 재현해 기준음(A음)을 440~443Hz 사이에 맞추는 현대 조율음에 비해 반음 낮은 415Hz으로 조율됐기 때문이다. 피아노 대신 '하프시코드'(현을 뜯어서 소리내는 건반악기), 기타와 유사한 '류트' 등 18세기 이전 시대의 악기들도 등장한다. 과거의 연주법이나 악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원전 연주여서다.
이번 연주를 위해 처음으로 내한한 첼리스트 겸 시대악기 거장 크리스토프 코앵(66·사진)은 합주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앙상블 '울림과퍼짐'과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바로크 첼로를 연주하게 됐다"고 밝혔다. "원전 연주에서 중요한 건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명확히 연주)을 투명하게 표현하는 거에요. 연주 환경도 어쿠스틱한 음향을 잘 살려주는 게 매우 중요하죠. "
195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코앵은 모던 첼로, 바로크 첼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고음악 전문 연주자다. 비올라 다 감바는 14~15세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걸쳐 연주된 첼로의 전신이다. 바로크 첼로는 비올라 다 감바 보다 모던 첼로와 훨씬 유사하지만 악기 재질이나 주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코앵은 7세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해 12세에 파리음악원에 들어갔다. 파리에서 공부를 마친 코앵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가게되면서 당시 유럽에서 부흥하던 고음악(바로크시대 이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빈에는 바로크 음악 전문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6~2016)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고음악 부흥 운동을 선도하는 인물이었다. 이후 그는 스위스 바젤로 넘어가 스콜라 칸토름 바실리시스에서 죠르디 사발(Jordi Saval)에게 비올라 다 감바를 배웠다. 스콜라 칸토룸 바실리시스는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음악 아카데미로 고음악에 집중하는 단체다.
"그때 바젤에 마침 모던 첼로의 선구자 로스트로포비치도 있었어요. 모든 시대의 첼로가 공존하는 곳에서 배운 셈이죠."
그는 모던 첼로, 바로크 첼로, 비올라 다 감바. 각각 악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올라 다 감바는 매우 시적인 악기에요. 장식음도 유려하고요. 다만, 음량의 한계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지 못해 사라졌죠. 귀족들이 좋아했던 노블한 악기에요. 바로크 첼로는 지금의 첼로와 비슷하지만 장치가 달라요. 양 창자로 만든 '거트 스트링'을 사용해서 울림이 많고 배음이 풍성한 소리를 내요. 모던 첼로도 20세기에 대폭 달라졌어요. 로스트로포비치를 필두로한 러시아 학파가 등장한 뒤로부터 테크닉 등이 크게 바뀌었죠. "
첼로 역사와 발전 과정을 깊이있게 공부해온 그는 수십년째 여러 고음악 앙상블을 이끌어오고 있다. '리모주 앙상블 바로크' 음악감독으로 22년 이상 활동해왔으며 현재는 모자이크 콰르텟 멤버로도 활약하고 있다. 기록이 완전하지 않은 과거의 연주를 재현하는 일에는 많은 대화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아무리 고증을 한다해도 예전 연주와 아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어요. 완벽한 기록이 남아있는게 아니라서 증거가 없거든요. 다만, 계속해서 연구하고 시도할 뿐입니다."
코앵은 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울림과퍼짐 고음악시리즈 2024 '베네치아-나폴리' 무대에 올라 17세기와 18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레퍼토리들을 선보인다. 비발디같은 친숙한 작곡가들을 비롯해 수프리아니, 포르포라 등 첼로 레퍼토리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작곡가들의 프로그램으로 채웠다.
"고음악은 드라마틱합니다. 직관적이고요.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을 낭만주의 시대 음악으로 이미 경험했잖아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사전정보 없이 편하게 즐기면 됩니다"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