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잘하면 감사인 지정 면제에 가점…벌금도 줄여준다

입력 2024-04-02 17:07
수정 2024-04-02 17:17

정부가 올 하반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본격 가동을 앞두고 ‘밸류업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신규 인센티브 중 일부는 기존 공시 우수기업 등에 주는 혜택과 중복돼 정책 유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일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동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기업 밸류업 관련 회계·배당 부문 간담회’를 개최했다.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한국ESG기준원, 자본시장연구원 등을 비롯한 유관기관과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이 참석했다. 회계법인 중엔 삼일회계법인이, 개별 상장사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참여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배당절차 개선 우수기업 대표로 회의에 들어갔다.

금융위는 이 자리에서 ‘밸류업 우수기업’으로 표창을 받은 기업에 신규 인센티브 다섯 가지를 줄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는 내년 5월부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우수 기업을 10여개사 선정해 표창을 줄 예정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공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적절한지, 계획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을 따져 시상한다.

금융위는 내년부터 밸류업 표창을 받은 기업에게 외부감사인 주기적 지정 면제 심사시 가점을 부여할 방침이다. 주기적지정제는 상장사 등이 6년간 외부감사 회계법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하고, 3년간은 정부가 지정한 회계법인에게 감사를 받는 제도다. 정부가 지정할 땐 회계법인간 입찰 등 경쟁이 없다보니 기업 입장에선 통상 자유선임 때보다 감사에 드는 비용 부담이 높다. 금융위에 따르면 신외감법 도입 전인 2017년 대비 도입 4년차였던 2022년까지 상장사 평균 감사보수는 약 127% 상승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감사 관련 지배구조가 이미 우수한 기업을 우대하고,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유도하고자 한다”며 “감사 선임·감독시스템을 잘 갖춘 지배구조 우수 기업에 가점을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올리려는 노력과 지배구조 개선, 회계 투명성 강화 등은 서로 맞닿아 있는 일”이라며 “밸류업 표창 기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밸류업 표창 기업에 곧바로 지정감사를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외부기관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지배구조 평가위원회를 통해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선정하고, 이들 기업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일정기간 만큼 주기적 지정 적용을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3년간 주기적 지정 면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 면제에 대한 구체적 평가기준과 방법, 면제 방식 등은 추가 검토를 거쳐 올 2분기 중 확정하기로 했다. 일단 연내 외부감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정 면제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밸류업 우수 기업에게 벌금·과징금 등 조치를 일부 덜어주는 인센티브 안도 내놨다. 기업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회계·상장·공시 관련 감리를 받아 제재 조치를 앞두고 있을 때 밸류업 표창을 제재 감경 사유로 고려할 방침이다. 불성실공시를 한 경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혜택을 제공한다. 거래소 규칙 위반 사항이 고의·중과실이 아닐 경우엔 벌금·제재금 등 제재 처분을 1회에 한해 6개월간 유예해준다.

밸류업 표창을 받은 기업은 상장 유지를 위해 거래소에 내야 하는 연부과금 의무를 1회 제외해주고, 유상증자 등 사유로 추가·변경상장을 할 때 부과되는 수수료도 빼준다.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3대 인센티브(5종 세정지원, 거래소 공동 투자설명회 우선 참여,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우대)에 더해 인센티브가 총 8개로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기업을 비롯한 시장 반응은 미지근한 분위기다. 연부과금 의무 제외, 추가·변경상장 수수료 면제,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유예 등 세 가지는 기존에도 거래소 공시 우수법인에 제공하는 혜택과 사실상 같다.

금융위는 앞서 공시 우수법인 선정 시 밸류업 우수 기업에 가점을 주겠다고도 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상장 연부과금은 10조원대 시총 기업의 경우에도 1600만원 수준”이라며 “시총이 아무리 커도 최대 5000만원 상한이 있기 때문에 상장사 입장에서 대단한 인센티브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 상장사 재무·공시담당 임원은 “지정 감사 회피 가능성을 제외하면 기존 발표 내용 대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