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앞서 정부는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는 규제 특례를 지정했는데, 사법부에서 3주 만에 이를 뒤집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온라인 판매 허용 여부에 대한 사법부와 정부의 엇갈린 판단을 두고 관련 업계에서도 혼란이 일고 있다.○"국민보건 입법목적 정당"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8일 안경사가 전자상거래 등을 통해 콘택트렌즈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의료기사법) 제12조 제5항 제1호 중 일부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안경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면서도 "국민보건의 향상·증진이라는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선 과도한 제한이라 보기는 어렵고, 그로 인한 소비자의 불편이 과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안경사인 A씨는 2018년 2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총 3938회에 걸쳐 합계 3억5000만원 상당의 콘택트렌즈를 온라인에서 판매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서울중앙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의료기사법 제12조 제5항 중 '콘택트렌즈' 부분에 대해 2020년 3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콘택트렌즈를 규격대로 반복 구매하기만 하면 되는 경우까지 콘택트렌즈 전자상거래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콘택트렌즈 판매자의 직업의 자유와 고객의 선택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침해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헌재에 냈다.
하지만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콘택트렌즈는 손상되기 쉬운 부위인 각막에 직접 부착해 사용하는 물품"이라며 "콘택트렌즈의 유통과정에서 변질·오염이 발생할 경우 콘택트렌즈의 착용자는 심각한 건강상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심판대상조항은 이와 같은 콘택트렌즈의 위험성을 고려해 궁극적으로는 국민보건을 향상·증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전자상거래 등으로 콘택트렌즈가 판매된다면 착용자의 시력 및 눈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콘택트렌즈 착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콘택트렌즈를 전자상거래가 가능하면 안경사가 개설할 수 있는 안경업소의 수를 1개로 제한하는 의료기사법 취지에 어긋나게 된다"며 "안경사 아닌 자에 의한 콘택트렌즈 판매행위를 규제하기 사실상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온라인 판매' 실증 특례 지정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이른바 '콘택트렌즈 단독 판매법'은 이재선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국민 눈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표발의해 2011년 10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듬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는 전면 금지됐다.
콘택트렌즈 단독 판매법을 두고 전자상거래 및 플랫폼 업계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규제개혁 독립 정부 기관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2016년부터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 허용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022년 8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후로도 규제 개선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자 정부는 작년 11월 열린 제31차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민생 규제 혁신방안' 167건을 발표하면서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지난달 7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34차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안경업소의 콘택트렌즈 판매 중개 플랫폼’의 실증 특례 업체 한 곳을 지정했다. 실증 특례란 다른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특정 기업이 제한된 조건 하에서 신기술·서비스를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위원회는 지정 업체가 구매 이력이 있는 콘택트렌즈 소비자와 해당 안경업소 사이에 온라인으로 구매 이력과 동일한 렌즈 판매를 중개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을 허용했다.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 허용 여부를 놓고 정부와 사법부가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자 관련 업계에서도 혼란이 일어날 조짐이다. 한 안경 업계 관계자는 "콘택트렌즈는 안구에 직접 접촉하는 의료기기로서 보다 엄격한 심사와 절차로 실증특례 대상인지부터 검토하고 지정해야 한다"며 "정부의 실증특례 지정은 이번 헌법 재판소의 판단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