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른만큼 지원금 뿌리면, 모두 金사과 사먹을 수 있을까

입력 2024-04-01 19:05
수정 2024-04-02 00:24
사과 한 개가 한때 1만원에 가까웠다. 라면에 김밥을 먹으려 해도 1만원은 있어야 한다. 소득이 물가를 못 따라간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친다. 그래서 물가를 따라잡을 수 있게 소득을 늘려주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건 ‘민생 회복 지원금’이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준다는 내용이다. 물가가 올랐으니 소득도 늘어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다. 그러나 소득을 늘려 물가를 잡겠다는 구상이 현실화했을 때 실제 일어날 결과는 기대한 것과 많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솔로 나라의 소득과 물가
‘솔로 나라’라는 가상의 국가가 있다. 이 나라에선 사과가 1년에 3개 생산되는데, 사과 한 개 가격은 5000원이다. 이 나라엔 영수 상철 현숙 옥순이 살고 있다. 이들의 연소득은 영수 1만원, 상철 7000원, 현숙 5000원, 옥순 3000원이다. 영수 상철 현숙은 사과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옥순은 그럴 수 없다.

어느 날 이 나라에 새 대통령이 당선돼 이렇게 선언했다. “사과가 너무 비싸 국민 여러분이 고통받고 있으니 1인당 2000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습니다.”

덕분에 솔로 나라 국민의 소득 수준이 다 같이 높아졌다. 영수는 1만2000원, 상철은 9000원, 현숙은 7000원, 옥순은 5000원을 갖게 됐다. 하지만 모두가 사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해서 사과 생산량이 3개에서 4개로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과 생산량은 계속 3개고 영수 상철 현숙 옥순 중 누군가는 여전히 사과를 먹을 수 없다.

한 가지가 달라지기는 한다. 사과 가격이다. 기본소득을 받기 전엔 영수 상철 현숙만 사과 가격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옥순도 소득이 늘었으니 사과를 사려고 할 것이다. 사과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는 증가했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사과 가격은 7000원으로 오른다. 돈 양과 물가의 관계솔로 나라의 사과 가격이 오른 것은 전 국민에게 지급한 기본소득이 한 나라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 즉 통화량을 늘린 것과 같은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통화량이 돈의 가치를 결정하며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이론이 화폐수량설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뿌렸다고 해 보자. 길에서 돈을 주운 사람들은 이 돈을 어딘가에 쓰려고 할 것이다. 외식을 할 수 있고 옷을 살 수도 있다. 은행에 예금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돈을 대출받아 쓸 것이다. 화폐 공급을 늘린 결과 재화와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수요가 증가한 만큼 물가가 오른다.

통화량과 물가의 관계를 보다 간명하게 나타낸 것이 화폐수량 방정식 M×V=P×Y다. 20세기 전반기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고안했다. 여기서 M은 통화량, V는 화폐유통속도, P는 재화 가격, Y는 재화 생산량이다. 이 가운데 화폐유통속도와 생산량은 단기적으로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외식 물가가 급등한 이유물가가 오른 만큼 소득도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늘어난 소득이 물가를 더 밀어 올린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위적인 임금 인상과 무분별한 돈 풀기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등한 여파로 물가가 크게 오른 것이 좋은 사례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가격 정보 포털 참가격을 보면 냉면 비빔밥 삼겹살 등 8대 외식 품목의 가격(서울 기준)이 5년 전보다 평균 29.2% 상승했다. 같은 기간 18.1% 오른 최저임금이 인건비 비중이 큰 개인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물가를 밀어 올린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공저한 <경제학 원론>에는 “통화량 증가 원인이 재정 수요를 충당하는 데 있다면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과다한 재정 지출에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기보다 재정적 현상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정말로 물가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면 민생 회복 지원금을 뿌릴 게 아니라 불필요한 정부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