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프로그램, 어쩌면 '마지막' 기회 [더 머니이스트-송태헌의 스마트펀드]

입력 2024-04-04 13:00
수정 2024-04-04 17:02

기대를 모았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습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이 기업의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 노력에 방점이 찍히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시장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반면 오랫동안 한국증시의 과제로 여겨져 왔던 주주가치 제고를 통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아직 그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테마주 위주의 단기투자 시장이 돼 버린 국내 증시에서 장기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노력이 시도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주주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기업들의 존재가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그런 기업에 투자하는 하나의 흐름이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주요 투자지표 비교공시 계획도 포함됐습니다. 특히 분기별 기업의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수익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지표의 시계열 정보뿐만 아니라 산업별 평균, 순위 등도 함께 거래소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될 예정입니다. 지금도 온라인 상에서 어렵지 않게 조회할 수 있는 기업별 가치평가 지표를 별도로 공시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러한 지표를 투자에 활용한다는 것은 주가가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기업의 가치에 연동돼 있다는 가치투자의 관점이 반영돼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지표의 기업 가치와 관계를 바탕으로 세 지표가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를 이해해야 기업의 종합적인 가치평가가 가능합니다.

주가와 순자산, ROE의 관계는 아래의 도식과 같습니다. 순자산은 기업의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항목으로 기업 자산 중 주주의 몫으로 대차대조표상 자본 항목과 동일합니다.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순이익이 발생하면 배당금을 주주에게 지불한 나머지가 이익잉여금으로 자본을 증가시킵니다. 자본 대비 순이익 비율인 ROE는 주주가치의 증가속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주주의 현재가치는 순자산이고 미래의 주주가치는 ROE의 속도로 증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BR로 기업의 가치의 적정성을 평가할 때에는 지배구조, 수익성의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지배구조의 건전성은 기업의 현재를, 수익성은 미래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먼저 지배구조의 건전성은 현재 기업이 순자산을 활용함에 있어서 주주간에 형평성에 맞게 활용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순자산에 대한 주주간의 권리는 원칙적으로는 지분율에 따라 배분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로 인해 물적분할 후 재상장, 인적분할 시 자사주마법, 터널링 등 추가출자 없이도 순자산에 대한 지배주주 지배력을 강화하고 일반주주의 권리를 희석시키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생겼습니다. 이렇듯 일반주주의 순자산에 대한 주당 비례적 권리가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그 권리가 현실에서 희석된 만큼을 주가가 반영한 결과 한국증시는 '저PBR 늪'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PBR이 1보다 낮다고 해서 바로 저평가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먼저 기업의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주주가치의 증가속도인 ROE를 살펴봐야 합니다. ROE는 다시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인 수익성과 주주환원의 두 변수에 의해 결정됩니다. ROE의 분자는 순이익이므로 기업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수익창출력이 유지되거나 증가하고 있어야 주주가치도 함께 증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업 이익이 감소하고 있거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면 미래의 주주가치는 오히려 감소해 현재 주주가치를 상쇄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ROE가 일정수준 이상 꾸준하게 유지되거나 상승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PBR이 1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저평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수익성 증가 외에도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당순이익을 증가시켜 ROE를 높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유의해야 할 것은 자사주를 매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각을 해서 상장주식수가 감소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ROE를 고려 주주가치의 성장속도를 고려하게 되면 적정 수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물론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만 현재 코스피 상장기업의 평균 ROE가 약 5% 수준임을 고려하면 적정 수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합니다. 이 때 활용할 수 있는 지표가 PER입니다. PER의 역수는 기업의 주당 순이익에 대해 시장에서 지불하고 있는 가격으로 주식에 대한 요구수익률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ROE는 적어도 그 기업의 속한 산업의 평균 요구수익률보다 높아야 투자 매력도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소개된 뒤 일부 업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로 저PBR 주식의 주가 상승이 이뤄졌습니다. 같은 기간 개인과 기관을 포함한 국내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14조원 이상을 순매도한 반면, 해외주식은 직접투자로 6조원 넘게 순매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KOSPI200 등 국내 증시지수 추종형 ETF는 지수 수준에 따라 단기적으로 자금의 유입과 유출이 반복되는 반면, S&P500과 나스닥100 등 미국증시 지수 추종 ETF는 올해 1분기에만 1조2000억원 넘는 자금이 순유입 되는 등 꾸준한 자금유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월배당 ETF도 자금의 꾸준한 유입이 이뤄지는 상품 대부분은 미국 지수 추종 상품으로 장기 투자의 수요는 이미 국내 증시를 떠나 해외시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정주주의 이해를 위해 일반주주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주주환원을 등한시 하는 동안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자본이민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시행되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어쩌면 우리증시에서 장기투자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퇴직연금 등의 장기적 수요기반이 마련돼 지속가능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전략으로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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