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의대 증원·의료 개혁, 국민께 드리는 말씀' 형태의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늘 송구하다"면서도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라며 증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안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의료계에 과학적 대안을 갖고 대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는 법"이라면서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의사들의 직역(職域)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며 "지난 27년간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의사 증원과 의료 개혁을 그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했다.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있음에도 의사협회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한다"며 "국민의 생명을 인질로 잡고 불법 집단행동을 벌인다면 국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를 향해 "지금이라도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제가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겠나"며 "의사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함께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의사 협회를 겨냥해선 "그동안 정부와 수십 차례 의사 증원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나. 심지어 총선에 개입하겠다며 정부를 위협하고 정권 퇴진을 운운하고 있다"며 "이는 대통령인 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백지화하라거나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 등의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도 없이 힘으로 부딪혀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법 집단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 제안과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는 것을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정부가 연 2000명 증원을 고집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데 대해선 "애초 점진적인 증원이 가능했다면 어째서 지난 27년 동안 어떤 정부도, 단 한 명의 증원도 하지 못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단계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마지막에는 초반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려야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갈등을 내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20년 후에 2만명 증원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부터 몇백 명씩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면 마지막에는 1년에 4000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논리"라며 "의대 지망생의 예측 가능성과 연도별 지망생들 간의 공정성을 위해서도 증원 목표를 산술평균한 인원으로 매년 증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