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관계에서 배우자 한쪽이 사망했다면 남은 배우자에게 상속권과 재산분할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민법 1003조 제1항, 민법 제893조의2 제1·2항, 제843조 중 제893조의2 제1·2항의 위헌 확인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합헌 또는 각하 결정했다.
헌재는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은 민법 1003조 1항 중 '배우자' 부분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산분할청구권에 관한 893조의2 1·2항 등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했다. 민법 1003조의 1항은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상속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민법 893조의 1·2항과 이혼한 자의 일방은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11년간 동거하던 B씨가 2018년 사망한 뒤 법원에서 '사실혼 관계가 성립한다'는 판단을 받자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법원에서도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았다.
2019년 A씨는 B씨의 유족을 상대로 상속 재산 반환 소송과 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했다. 민법 1003조는 배우자가 망인의 부모나 자녀(직계존·비속)와 같은 수준의 상속권을 갖고 법이 정한 비율만큼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정한다. 이때 받는 재산을 유류분이라고 한다.
직계 존속이나 비속이 없으면 배우자가 단독 상속권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배우자는 법률혼 배우자일 뿐 A씨와 같은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망인의 재산은 법정상속인인 형제자매 등에게 돌아갔다.
A씨는 법정상속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고,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과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도 청구했다.
헌재는 그러나 10년 전인 2014년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선례를 이번 사건에도 똑같이 적용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아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사실혼과 법률혼을 동일하게 볼 수 없으므로 해당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한쪽이 사망하면서 혼인 관계가 종료될 경우 사실혼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입법하지 않은 것(부작위)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재산분할청구권 조항을 두고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사실혼 부부 중 한쪽의 사망으로 혼인 관계가 끝난 데 대한 관련 법이 없어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부적합하다는 취지다.
현행 민법은 '일방 당사자의 사망으로 혼인이 종료된 경우' 생존 배우자가 상속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쌍방이 생전에 부부관계가 해소된 경우' 재산분할 제도의 규율을 받도록 정한다.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속·재산분할 제도 관련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영진 재판관은 "사실혼은 부부로서의 생활공동체라는 실질에서 법률혼과 다를 바 없다"면서 "생존 배우자는 재산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을 수 없어 가혹한 결과를 야기한다"고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적법한 청구로서 헌재가 판단을 내려야 하고, 사실혼 관계에서 일방이 사망한 경우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남겼다.
세 재판관은 "현재의 법체계 및 재산분할 제도 하에서는 사실혼 부부가 협력해 이룬 재산이 그 형성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상속인에게 모두 귀속되는 등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입법 형성에 관한 한계를 일탈해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