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주요국의 보조금 전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각각 수십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잇따라 조성하며 반도체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는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유로(약 3조6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29일 무역데이터 제공업체 글로벌트레이드얼럿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 도입된 신규 보조금 정책은 2021개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3년(106개)에 비해 18배, 5년 전인 2018년(517개)보다는 2.9배 증가했다. 전체 무역 개입 정책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58.6%로 5년 전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미국과 중국, EU는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산업에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퍼붓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일 반도체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의 세 번째 자금 조성에 나섰다. 규모는 36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2014년 26조5500억원 규모의 1차 펀드, 2019년 37조1500억원 규모의 2차 펀드를 조성했다.
미국은 2022년 시행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1조원), EU는 지난해 제정한 반도체법을 통해 2030년까지 430억유로(약 62조70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주요국이 거액의 보조금을 퍼부으며 핵심 반도체 기업 유치에 나서자 네덜란드도 ASML을 경쟁국에 뺏기지 않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네덜란드 정부는 28일(현지시간) 25억유로를 들여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의 교육·교통·전력망 인프라를 개선하는 내용의 ‘베토벤 작전’을 발표했다. 지난 1월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는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폭탄 발언’한 데 대한 대응책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각국의 보조금 전쟁으로 인해 한국 기업이 해외로 이전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인엽/신정은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