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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
왜 파운드리라는 사업모델이 필요했나? 기기 장비 및 클린룸에 대한 투자비가 점차 증가해서, 반도체 디자인 회사가 각자 투자비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제조의 전문성도 증가했다. 마스크 레이어도 급격하게 증가했고, 같은 형태를 만들기 위한 물질들의 변화도 다양했다.
하지만 최근엔, 칩들의 사이즈가 커지고, 이종 칩들의 결합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메모리칩과 CPU, GPU를 따로 만든 후 다시 붙여 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물성을 사용할 때는 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반도체회사, 디자인과 제조를 다 하는 회사들)이 훨씬 효과적으로 새로운 물질이나, 제조법에 대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디자인 위주의 발전을 할 때는 IDM에 유리하고, 제조법 위주의 발전을 할 때는 파운드리에 유리하다. 트랜지스터 디자인이 모스펫에서 핀펫으로 변화하던 2010년대에 삼성전자가 더 우수한 성과를 낸 이유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IDM으로서 더 유연한 디자인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2015년 EUV 도입은 TSMC가 더 앞섰다. 그도 당연할 것이, 디자인이 없는 파운드리이므로, 제조 기술이 주요 차별화 포인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면집에 비유하면, TSMC는 가스레인지를 더 좋은 화력으로 바꿔서 썼으나, 인텔이나 삼성은 라면을 바꾸는 걸 더 잘했다. 2015년 7나노 도입시기에는 가스레인지를 바꾸는 게 더 효과가 좋았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디자인이나 재료의 변화를 꾀하던 인텔이 오히려 장비를 바꾸고 있다. 반대로 TSMC는 이러한 과감한 투자에 주저하고 있다. 이번 신규 장비인 High NA EUV에 대한 투자금액은 이제 더더욱 비싸졌다. 대당 2천7백만 유로로 전 세대에 비해 거의 두배에 가깝다. 장비의 성능에 대해 확신도 하지 못하는 와중에, 이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려면, 충분한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난번 EUV 투자 시점엔 애플을 비롯한 스마트폰 판매가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이에 더불어 예상치도 못한 클라우드 컴퓨팅 수요까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 입장에서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요가 충분히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스마트폰은 이미 성장이 멈췄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투자도 이제는 주춤한 상황이다. AI 서버를 제외한 서버 투자는 사실 감소하고 있다. AI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작년에 판매된 엔비디아의 생성형AI를 지원할 수 있는 서버 판매 대수는 10만대에 불과하다. 전체 서버 시장의 1%였다. 올해는 물론이게 3~4배 성장이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래도 4%다. 물론 대당 콘텐츠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 파운드리의 매출에는 10배에 가까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서버 시장에서 보면 10% 정도의 수요진작 효과일 뿐이고, 전체 하이엔드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3%대 수요진작이다. 아직 너무 작다. 이 정도의 수요를 보고, 새로운 장비에 투자하기엔 부담이다. 이에 더불어, 엔비디아나 AMD 등 AI 칩 메이커들은 3나노 공정을 쓰지도 않는다. 아직도 5나노 공정이나 5나노 공정을 조금 수정한 4나노 공정에 머무를 뿐이다.
반면 인텔은 자기가 디자인도 하고, 제조도 하고, 판매도 한다. 본인의 강한 월렛 파워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투자가 가능하다. 또한 투자도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재료의 변화, 트랜지스터 디자인의 변화, 기기 장비의 변화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전세대에서도 할 수 있었다. 단지 돈을 아끼느라, 가장 비싼 기기 장비에 대한 투자가 늦었고, 모험하지 않다 보니 큰 수확도 거둘 수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 모험도 하겠다는 것이고, 투자도 이미 했다. 남은 변수는 장비의 성능뿐이다.
올해 ASML의 신규 EUV 장비가 처음으로 파운드리에 설치되기 시작한다. 인텔이 첫 번째 바이어가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에 따르면, 20 오스트롬 (2나노) 나 18 오스트롬 양산 라인에는 해당 장비가 사용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 EUV 도입계획을 보면, 2015년에 ASML의 첫 번째 EUV 장비가 TSMC에 도입되었고, 처음 몇년간은 고객들로부터 큰 반향을 거두지 못했고, 매출에 영향도 적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애플과 화웨이가 동시에 공급받기 시작했고, 이때 만들어진 칩이 인텔의 CPU 대비 동등한 성능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승기가 TSMC로 넘어간 경험이 있다. 이번엔 인텔이 신규 EUV 도입에서 앞선다.
인텔은 본인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시장으로 밀어내는 게 가능한 회사다. 고객의 수요를 체크해가면서 갈 필요가 없다. 우수한 CPU가 나온다면, 그 CPU 사갈 디바이스는 널려있다. 결과적으로, 인텔이 신규 EUV 장비의 도입부터 매출로 연결되는 시간은 2015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2024년 시험생산 시작, 2025년 양산라인 도입, 2026년엔 TSMC 공정에서 생산된 제품과의 본격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승리하면, GPU 시장도 넘볼 수 있다. 엔비디아의 칩도 인텔의 미국 팹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사이클과 다른 것은, 악화한 수요상황과 디자인과 공정의 동시 변화라는 점이다. TSMC는 보통 디자인의 변화에 대응이 느렸고, 공정변화에는 빨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둘 다 느리다. 느린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텔 제국의 복귀라는 결과를 가져올지 불확실하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러한 그림에서 삼성은 어디에 있나? 삼성의 전략적 위치는 인텔보다도 유리하다. 분업으로 일관되던 반도체업계에 이번에야말로 통합된 의사결정의 힘이 보여줘야 할 차례이다. 디자인과 제조의 통합뿐 아니라, 로직 칩과 메모리칩의 통합까지도 이루어지는 현 상황에서, 게다가 디바이스(스마트폰)와 칩의 유기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할 현시점에 삼성전자는 통합된 공격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