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전용 자리라니…" 아파트 입주민들 갈등 폭발한 까닭 [최수진의 나우앤카]

입력 2024-03-31 11:07
수정 2024-03-31 14:00
"차 앞 유리에 '딱지'가 붙어있는데 기분이 확 나빠지더라고요."

아파트 경차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댔던 이모 씨(34)는 다음날 일어났다가 민원이 많으니 차를 옮겨달라는 취지의 관리사무소 경고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씨는 "안 그래도 주차 공간도 부족한데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특혜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주차난으로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파트 생활 지원 플랫폼 '아파트 아이'가 발표한 '아파트 입주민 민원 리포트'에 따르면 입주민 불만 1위는 주차 문제(29.1%)였다.

특정 대상만을 위한 주차 구역이 생기면서 차주간 분쟁이 빈번해지고 있는데. 이 씨와 같은 경차 전용 주차구역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2004년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경차를 늘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차 전용 주차구획을 확대하는 건물주에게 교통유발부담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기도 했다. 현재 주차장법 시행령에는 단지 조성사업 등으로 설치되는 노외 주차장에는 경차 전용 주차구획을 총 주차대수의 10% 이상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문제는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경차 차주들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

경차 모닝을 모는 최모 씨(38)는 아파트 지하 현관 앞에 있는 일반 주차구역에 차를 댔다가 관리사무소로부터 차를 빼달라는 경고장을 받았다. 최 씨는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너무 구석진 곳에 있어서 일반 구역에 댔다"면서 "경차라고 해서 무조건 전용 자리에 대야 하는 건 역차별 같다"고 말했다.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일반 차량 주차 구역보다 좁아서 경차가 아닌 경우 차 문도 간신히 열리는 수준.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도 일반 차량이 경차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것은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다.

한 중형 세단 차주는 "밤늦게 들어오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몇 바퀴를 돌아도 차를 댈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빈 경차 전용 주차구역에 댈 때도 있다"며 "그 와중에 일반 차량 자리에 주차한 경차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경차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차만을 위한 자리인 만큼 효과를 보려면 위반시 법적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는 경차 전용 주차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할 경우에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은 없다.

반대로 경차 전용 주차구역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경차 보급 확대라는 취지와 맞지 않게 최근 경차 판매량이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차 신차 등록 대수는 12만4080대로 전년 대비 7.6% 감소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경차 전용 주차구역은 경차를 우대한다는 의미지만 경차 판매 대수가 줄고 있는 상황이라 실효성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주차 공간을 고려해 꼭 필요한 영역에 설치해 활용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