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연립 등 빌라 집주인이 최근 작년보다 하락한 공시가격을 받아 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공시가가 내려가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 보증 한도도 낮아져 ‘강제 역전세’(이전 계약보다 전셋값 하락)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는 지난해보다 1.52% 올랐다. 지난해 가격이 뛴 서울 강남권 아파트 등은 올해 공시가도 상승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여파로 수요가 확 꺾인 빌라 중에선 공시가가 하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빌라의 공시가는 작년 1억8100만원에서 올해 1억7100만원으로 1000만원 낮아졌다.
보유세 부담 감소 등의 이유로 공시가 하락을 반기는 아파트 소유주도 있다. 하지만 빌라 보유자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해 5월부터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기존 공시가의 150%에서 126%로 강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공시가가 내려간 만큼 보증 한도는 더 낮아지게 됐다. 서울 송파구 한 빌라 공시가격은 2022년 2억300만원에서 작년 1억8900만원으로 내려간 데 이어 올해는 1억8400만원으로 낮아졌다. 2022년만 해도 이 빌라의 HUG 보증 한도는 3억450만원(2억300만원×1.50)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2억3184만원(1억8400만원×1.26)으로 7000만원 넘게 내려간다. 보증 한도 차원에서 보면 전셋값이 2년 새 7000만원 넘게 떨어진 셈이다. 전세 세입자는 HUG 보증을 받는 물건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빌라 전셋값이 HUG 보증 한도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처럼 전세사기 이슈가 있었던 지역에서 빌라 공시가가 5% 이상 떨어진 사례가 많다”며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반환보증보험 문턱 강화’라는 정부 정책으로 보증금 미반환 사고 위험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빌라를 여러 채 보유한 집주인일수록 전셋값 차액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정보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갱신 시기가 다가오는 수도권 빌라 전세 계약의 66%가 역전세 위험에 처해 있다.
업계에선 HUG의 반환보증보험 기준을 공시가가 아니라 시세에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측은 “아파트 유형이 KB부동산 시세나 한국부동산원 시세를 준용하는 것처럼 정부가 비(非)아파트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가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등에서 비아파트 시세를 제공하는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