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말고 구찌'. 22대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과 지지자들 중심으로 각종 패러디 홍보물이 나오는 가운데 명품 브랜드가 언급된 문구의 포스터(사진)가 화제가 됐다. 이 패러디 포스터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조 대표는 지난 25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누가 만드셨을지?”라는 짧은 글과 함께 이 홍보물을 올렸다. 조 후보의 사진과 함께 'DIOR 말고... 9UCCI(디올 말고 9찍)'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을 거론하는 한편 조국혁신당의 비례정당 기호인 9번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명품 브랜드가 뜬금없이 소환된 이 패러디 포스터를 두고 개혁신당에선 "조 대표는 '구찌'가 아니라 '구치소'가 어울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이 선거 홍보 목적으로 기업 상표나 로고 등을 차용해 패러디물은 상표법 등 현행법 위반에 해당할까. 명품 업체 측에선 기업 상표와 후보자 간의 큰 관련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찌 관계자는 “포스터 콘텐츠가 구찌와는 관련이 없어 딱히 대응할 만한 사례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표법 108조는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거나 타인의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행위' 등을 상표권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조 대표의 포스터는 브랜드 명칭 가운데 알파벳 'G'가 아닌 숫자 '9'를 써 상표를 오인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상표법상 예외적으로 언론보도나 비평 등의 공익적 활동이나 비상업적 목적으로는 기업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 이 홍보물도 해당 상표의 상품군과 동일한 상품군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표권 침해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 상표권 전문 변호사는 “선거 홍보물이다 보니 상품이나 서비스업권이 유사하지 않고, 상업적인 활동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상표권 침해 사례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는 저촉될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에서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비상업적 사용 등 정당한 사유 없이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상품의 용기·포장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해 타인의 표지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명시했다.
최유나 법률사무소 가까이 대표변호사는 "상표 패러디는 이미지를 희화화할 수 있고 유명 브랜드의 신용이나 명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서도 "소비자가 기존 로고와 식별하기 어려워 명성이 손상될 정도가 아니라면 기업 측에서 법적 문제를 제기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공직선거법상 제한되는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홍보물이나 패러디물은 선거법상 제한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허위사실이나 비방이 포함된다면 제재할 수 있다고 했다. 공직선거법은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후보자와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250조) 비방하는(251조)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