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이면 남서부 항구 도시 예테보리에 닿는다. 북유럽 기계공업을 선도했던 볼보자동차의 고향이자 수출이 유리해 각종 제조 기업이 자리 잡았던 굴뚝 도시. 요즘 예테보리는 북유럽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다. 현대무용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날리는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가 있고, 각종 영화제는 물론 북유럽 최대 규모 도서전도 열린다. 예테보리라는 도시의 이름은 낯설더라도 볼보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예테보리 콘서트홀’은 익숙하다. 일부 고급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클래식 역사를 간직한 이 공연장의 사운드 시스템이 그대로 심어져 있어서다. 그중에서도 지난 10년간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의 활약은 압도적이다. 단 38명의 무용수가, 일반 대중에게 여전히 비인기 장르인 현대무용으로 세계 무대를 휘젓고 있어서다. 애플, 디올, 넷플릭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먼저 찾아와 줄줄이 협업을 제안한다.
20개국 무용수 모여 ‘열린 집단 창작’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는 1994년 건립된 예테보리 오페라하우스에 소속된 무용단이다. ‘예테보리 발레단’으로 출발한 이 무용단은 원래 클래식 발레 공연을 주로 올렸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12년. 이름을 바꾸고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대담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혁신적인 단체’로 거듭났다.
혁신의 중심엔 사람이 있었다. 20여 개 국가에서 온 38명의 무용수는 모두 춤꾼이자 창작자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단원 선발 오디션에 나서자 1200~1300명이 지원서를 냈고, 오직 실력만으로 사람을 뽑았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중국과 대만, 필리핀, 호주 등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들은 연습실과 무대에서 ‘집단 창의성’을 쏟아냈다. 한국인 무용수 김다영도 지난해 이곳에 입단했다. 카트린 할 예술감독은 “각각의 무용수는 작품의 출연자이자 공동 창작자”라며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무용수들의 다양성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했다.
다국적 무용수가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을 자양분으로 빚어내는 창의적 앙상블은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세계적 안무가들을 끊임없이 예테보리로 이끌었다. 윌리엄 포사이드, 지리 킬리언, 오하드 나하린, 알렉산더 에크만, 호페쉬 쉑터, 샤론 에얄, 크리스탈 파이트, 요안 부르주아,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등 손에 꼽기도 힘들다. 신진 안무가들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등용문도 됐다. 높이 10m, 각도 34도의 경사로에 무용수들을 세운 다미안 잘레의 ‘스키드(Skid·2017)’는 무용단 최고의 히트작이자 안무가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줬다.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 ‘걸어서 5분 거리’
예테보리는 스웨덴 대외 교역의 약 30%가 이뤄지는 도시다. 인구가 58만 명에 불과하지만 개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항구 도시 특유의 DNA가 이들을 북유럽 문화예술의 허브로 이끌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항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바닷가 도시들은 ‘지리적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예테보리에선 오페라하우스를 기준으로 아베뉜거리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문화중심지’인 예타 광장이 나온다. 거대한 포세이돈 동상이 분수대와 함께 있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예테보리 시립미술관과 도서관, 콘서트홀 등이 모여 있다. 1861년 문을 연 예테보리 시립미술관엔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 등 거장의 작품을 비롯해 다른 미술관에서 보기 어려운 북유럽 작가들의 풍경화와 역사화, 현대미술 작품까지 다 있다. 1978년부터 매년 2월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 ‘예테보리 국제영화제’가, 매년 8월엔 사흘간 대중음악 축제인 ‘웨이 아웃 웨스트 음악제’가 열린다. 9월 이 광장을 중심으로 국제 도서전도 열리는데 800여 개 출판 관계자와 8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다. 어느 계절에 어떤 목적으로 예테보리를 찾더라도 누구나 헤매지 않고 1년 365일 문화예술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신연수 기자/예테보리=김진원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