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찾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유전학과 서유신 교수 연구실은 20대와 40대 중후반 여성의 난소 세포 및 유전자를 비교하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다른 장기에 비해 2~3배 빨리 늙어버리는 난소에서 인류 노화의 수수께끼를 찾기 위한 세계 최초 임상시험을 이끌고 있는 현장이었다. 男보다 오래 사는 女…비결은 난소?난소 노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서 교수는 2000년대부터 노화 유전자 연구 등으로 글로벌 학계에서 주목받은 한국인 과학자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 하버드의대 교수가 이끌었던 세계 최고 권위의 장수학회 ‘AHL리서치’에 소속된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과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그 이유로 난소 역할에 주목했다. 서 교수는 지난해 30대 중반~40대 초반 여성을 대상으로 세계 최초의 ‘난소 나이 되돌리기’ 임상을 시작했다. 난소가 늙는 이유를 알고, 그 노화를 지연시키는 방법을 알아내면 여성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40대 후반을 넘긴 여성의 난소에서는 다른 장기에서 70대가 돼서 일어나는 변화, 예컨대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유전자 변형, 엠토르(mTOR) 과발현 등이 모두 포착된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여성뿐 아니라 남성 몸에서도 70대쯤 발생하는 노화 생체 변화가 모두 난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난소에 장수 유전자가 숨어 있다면, 그 유전자의 발현 여부로 해당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남자 형제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100세 이상까지 산 ‘장수 여성’은 대부분 40대 넘어 아이를 낳았고, 그런 여성의 남자 형제가 오래 살았으며, 젊은 쥐의 난소를 이식받은 늙은 쥐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께 난소 노화 지연 임상 결과 나와서 교수는 향후 임신 계획이 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mTOR 억제제를 복용한 뒤 난소의 기능이 얼마나 더 강화됐는지, 얼마나 더 많은 난자를 배출해내는지 분석해 ‘노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10여 명에게 투약을 완료한 상태이며, 이르면 내년께 임상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난소는 ‘타임머신 장기’라고 불릴 만큼 인체에서 가장 먼저 제 기능을 잃기 때문에 임상 결과가 빨리 도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성은 수백만 개의 난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출생 직후부터 난포 개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난소 기능도 저하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난포 수는 30만 개 정도로 줄어들고, 30대 중반에는 2만 개, 40대부터는 거의 없는 수준과 다름없다. 서 교수는 “번식의 관점에서만 보면 난소는 40대 중후반께부터 제 기능을 잃는다”며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번식 외 기능을 난소가 갖고 있고, 그 기능이 단순 난소뿐 아니라 몸 전체의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폐경 조절 유전자도 ‘주목’서 교수는 폐경을 조절하는 유전자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난소가 번식 기능을 다하고 폐경에 접어들면 골다공증, 관절통 등의 발생률이 높아진다. 서 교수는 “여성은 어쩌면 난소 덕분에 남성보다 더 오래 살지만, 그 난소가 너무 일찍 기능을 다하기 때문에 더 오래 고통스럽게 살기도 한다”며 “미래에는 폐경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언제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소 연구는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 폭을 넓힐 것이라고도 했다.
노화전문 학술지 네이처에이징에 따르면 항노화 연구의 경제적 가치는 수명이 1년 늘어날 때 38조달러, 10년 늘어날 때 367조달러인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