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접한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답지 않아 재밌습니다. 저도 한국 남자 마음을 알고 싶어요.”
지난 20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히카리에빌딩. 20·30대 여성 1000여 명이 선 줄이 100m를 넘었다. 일본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의 팬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TBS는 이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굿즈 판매, 주연 배우와의 만남 프로그램 등으로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팬페스티벌에 참가한 하라다 아오이(30)는 “어렸을 때 엄마가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아이 러브 유’는 일본인 여주인공과 한국인 남주인공이 출연하는 ‘일본이 만든 한류 드라마’다. 눈을 보면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여주인공이 한국어를 모르는 까닭에 처음으로 속마음이 읽히지 않는 남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지난 1월 첫 방영 이후 일본 TV 다시보기 사이트 티버에서 줄곧 드라마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지 넷플릭스에서도 10위 내를 유지하고 있다.
이날 행사 역시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 티켓값이 1만2000엔(약 11만원)에 달했지만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됐다. 오후 3시 행사 시작 세 시간 전부터는 입장을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은 이번 드라마가 과거 한류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제작해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나 방탄소년단(BTS) 등 K팝과 달리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내놨다는 점에서다. 한류 콘텐츠 전문가인 황선혜 일본 조사이국제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일본 내 한류 팬이 10~30대로 확장되면서 드라마, 음식, 한국어 등이 독자적인 문화가치로 정착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한국 자체가 문화가 됐다”고 평가했다.
드라마 내용 측면에선 과거 한류 콘텐츠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나카지마 게이스케 TBS 프로듀서는 드라마 소개에서 “일본과 한국이 음식과 패션, 음악과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를 통해 굉장히 친밀해졌다”며 “한·일 남녀의 러브스토리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로 서로 치유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주일한국문화원이 연 고교생 대상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역대 최다인 369명이 참가한 것도 ‘한국 배우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미도리카와 리치 리리(쓰시마고)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한국어를 접했다”며 “영화 분야에서 한국어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했다.
TBS는 드라마의 인기를 활용한 부대사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극 중 비빔밥 순두부 등 한국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파는 테마 카페를 시부야에 연 게 대표적이다. 황 교수는 “한국 콘텐츠가 문화산업이라면 일본 콘텐츠는 저작권산업”이라며 “한·일 합작 콘텐츠의 다양성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