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차세대 전략 시장으로 점찍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인도에서 암초를 만났다. 인도 정부가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업체를 유인하기 위해 최대 100%에 달했던 전기차 수입 관세를 파격적으로 낮추면서다. 인도에 5조원 이상 쏟아부어 연 10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전기차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려던 현대차로선 공든 탑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 15일부터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수입 전기차에 대해 기존 70~100%였던 관세를 15%로 인하했다. 인도에 최소 5억달러(5700억원)을 투자하고 3년 안에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겠다고 확약하는 자동차 제조업체의 전기차가 대상이다.
테슬라는 이번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힌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추가 기가팩토리 후보지로 인도를 수차례 거론했다. 그 조건으로 인도 정부에 수입관세 인하를 요구해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관세 인하로 미국 기준 가격이 3만8990달러(5220만원)인 테슬라 모델 3가 인도에 수입될 경우 인도 내 출시 가격은 370만루피(5980만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 현재 인도에서 최저 459만5000루피(7420만원)에 팔리고 있는 현대차 아이오닉 5보다 20% 낮은 가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1년부터 인도 진출을 노려온 테슬라가 결국 수입관세 인하를 얻어낸 만큼 향후 기세가 매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인도에 20억달러를 들여 전기차 공장을 착공한 빈패스트도 투자 규모를 늘리겠다고 나섰다.
현대차와 기아는 적잖은 위협을 받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왔다. 지난해 5월부터 올 초까지 현지 수소·전기차 생태계 구축과 생산 설비 확장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규모만 5조2000억원에 이른다. 수입 관세 장벽이 높은 인도에서 한발 앞서 현지 생산능력을 갖추고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현대차그룹은 이제 막 개화하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도 전에 경쟁 심화에 직면하게 됐다. 이미 현지 1위 제조사인 일본계 마루키스즈키와 토종 타타모터스가 빠르게 전기차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는 데다 지난해 인도 시장에 진출한 중국 BYD도 올해 세 번째 전기차를 출시하며 공격적으로 세를 넓히고 있다.
인도자동차판매협회(FADA)에 따르면 올 1~2월 현대차의 인도 전기차 판매량은 280대로 4위 BYD(293대)에 밀려났다. BYD는 최근 고율 관세에도 아이오닉 5와 EV6보다 저렴한 410만루피(6620만원)에 전기 세단 ‘실’을 현지에 출시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