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코르토, 이그나츠 프리드만, 요제프 레빈, 마크 함부르크, 세르지오 피오렌티노 등 제게 거대한 우주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쇼팽 에튀드를 연주해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들처럼 근본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명문 클래식 음반사인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고 발매하는 첫 앨범 ‘쇼팽: 에튀드’에 대해 한 말이다. 다음달 발매되는 이 앨범(사진)에는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10’ ‘에튀드 작품번호 25’가 담긴다. 미국 카네기홀 데뷔 무대, 영국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등 올해 그의 주요 공연 레퍼토리에서도 쇼팽 에튀드는 빠지지 않는다. 쇼팽 에튀드는 많은 피아니스트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연주자의 기술적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에 그쳤던 에튀드를 압도적 예술성을 갖춘 건반 음악의 주요 장르로 승격시킨 게 바로 쇼팽이라서다.
프랑스어로 ‘연구’ 또는 ‘습작’을 뜻하는 에튀드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통상 연습곡으로 일컬어진다. 에튀드는 음계, 아르페지오, 옥타브, 트릴 등 연주자들의 기교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6세기 초에 생겨났고, 18~19세기 가장 활발히 작곡됐다. 에튀드의 운명(運命)이 바뀐 건 쇼팽의 단호한 음악 철학 때문이었다. 평소 쇼팽은 “선율적인 아름다움이 결여된 작품은 음악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기계적 훈련만을 위한 연습곡을 꺼렸다. 단순히 손가락을 빠르게 굴리거나 기술적 결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쇼팽은 에튀드에서도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 기교적 측면이나 정서적 측면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완성된 에튀드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에튀드가 집에서 홀로 연습하는 작품이 아니라 관중이 있는 무대에서 연주되는 작품으로 당당히 올라설 수 있게 된 게 바로 이때부터다. 쇼팽은 자신의 연습곡을 ‘연주회용 에튀드(concert etude)’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