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에야 적색수배를 내렸다면 그동안 인터폴에 수배 요청도 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지난 19일 라임 사태의 주범 중 하나인 이인광 에스모 회장 검거 소식이 들리자 한 라임 피해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4년간 도피하던 이 회장이 프랑스 현지에서 검거됐음에도 그는 “검·경의 라임 재수사가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4000여 명에 달하는 라임 피해자는 수사당국이 더 늦기 전에 마지막 남은 ‘몸통’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과 그 측근의 신병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회장이 이끌던 메트로폴리탄은 해외 리조트 및 카지노 사업 명목으로 라임으로부터 3500억원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다. 이 투자금은 1조7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단초가 됐다. 도피 끝에 검거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서 김 회장을 ‘실질적 몸통’으로 지목했다.
라임 피해자들은 도피 중인 김 회장 일당을 상대로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김 회장 ‘오른팔’이자 메트로폴리탄 관련 회사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촌 형 김모씨(61)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김씨는 김 회장 지시사항을 측근들에게 전달하고 도피 생활을 도운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관련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 회장 신병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지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들이 라임 자금으로 구매한 이슬라리조트와 카지노의 채권에 대해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김씨는 피해자들을 사기 및 무고죄 혐의로 맞고소했다. 피해자 상대 고소 건은 불송치 결정을 받긴 했지만, 이 사이 김씨 수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김씨가 항암 치료와 요양 등을 이유로 필리핀에 체류하고 있어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말만 거듭하고 있다.
김씨는 서울남부지검에 회삿돈 1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당한 건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대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 돈은 김 회장 도피 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해 5월엔 차명으로 보유 중이던 필리핀 리조트 지분을 넘겨받기도 했다.
피해자들 속은 하루하루 썩어가고 있다. 이들은 도피를 일삼고 수사 와중에도 피해자를 기만한 ‘라임 몸통’의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경찰청이 최근에야 김 회장을 검거·송환 ‘핵심 대상’으로 분류한 것도 뒤늦은 감이 있다. 이미 김 회장 관계자들이 자금을 다 빼돌렸을 것이라는 체념마저 커지고 있다. 검·경은 라임 재수사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