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장년층의 고용 안정을 위해 연공서열식 임금 상승 기간을 제한하고, 비정규직 근무 기간이 길수록 해고 비용을 높여 정규직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책 연구기관 보고서가 나왔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일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이라는 제목의 KDI FOCUS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해고가 자유롭다고 알려진 미국에 비해 오히려 한국의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이 더욱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은 남녀 모두 임금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가 연령과 함께 안정적으로 높아지는데 한국은 중년 이후 고용 안정성이 급격히 나빠져서다. 여성의 경우 30대 중반 이후, 남성의 경우 40대 중반 이후 근속연수 증가가 멈추는 경향이 나타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 중장년층의 고용불안은 뚜렷하다. 한국 55~59세 남성 근로자 중 1년 미만 근속자 비중은 2021년 기준 26.8%에 달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다.
표면적으로는 비정규직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55~64세 근로자의 ‘임시고용’ 비중은 2022년 기준 남성과 여성이 각각 33.2%, 35.9%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2위인 일본과도 10%포인트 이상 격차가 있다. OECD 평균은 남자 8.2%, 여자 9.0%다.
한 연구위원은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중장년층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수요가 적다는 점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어떤 이유로든 정규직 일자리에서 이탈하면 다시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어려워서다. 한 연구위원은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의 임금 상승률은 비교 가능한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선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 퇴직시키려는 유인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단 추가적인 정년 연장에 대해선 정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선을 그었다. 혜택이 소수의 근로자에게만 집중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2023년 경제활동인구 조사 고령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64세 남성 임금 근로 경험자 중 생애 주 직장 정년퇴직자는 26%로 네명 중 한명 꼴이었다. 64세 여성 임금 근로 경험자는 7%에 그쳤다.
한 연구위원은 시장의 힘을 통해 고용안정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공 서열에 의한 임금 상승을 일정 기간, 예를 들면 10년 이후부터는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공공부문 직무급 확대 정책을 민간 기업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계약종료 비용을 상향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기간제나 파견 등의 사용기간에 따라 더 많은 계약종료 수당이나 전벌금을 부과하되 정규직을 전환하면 이를 면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 연구위원은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을 때 ‘원직 복직’ 대신 금전 보상을 허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국은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 시 다른 사유가 없으면 원직복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처럼 획일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다 보니 무리한 원직복직 시도와 분쟁의 장기화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채용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한 연구위원은 다른 OECD 국가들처럼 금전 보상에 의한 해결 비중을 높이고, 해고 과정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한 연구위원은 “단 제도개혁 시점 이후 새롭게 체결된 고용계약부터 점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