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 업계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가 업력 3년 미만의 중소 자동차 수리 업체에 팔린다. 제주맥주는 제주 지역 맥주로 시작해 한때 맥주 시장의 판도를 흔들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최근 몇 년간 주류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창사 9년 만에 경영권을 매각하게 됐다.
제주맥주는 최대주주인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문혁기 대표가 보유한 주식 864만3480주를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19일 공시했다. 엠비에이치홀딩스는 문 대표의 부친인 문성근 대표가 최대주주다.
주당 매각가는 1175원, 총 매각 대금은 101억5609만원이다. 제주맥주 임시 주주총회 하루 전인 오는 5월 7일 더블에이치엠이 대금 잔금 지급을 완료하면 제주맥주 최대주주(지분율 14.79%)에 오른다. 더블에이치엠은 2021년 6월 서울 장한평 차 매매 단지 인근에 설립된 매출 27억원, 자산 규모 16억원(각각 작년 기준)의 자동차 수리 업체다.
더블에이치엠은 5월 말로 예정된 100억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 대금을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더블에이치엠은 경영권을 유지하지만, 최대주주는 증자에 참여한 지와이투자조합으로 또다시 바뀐다. 더블이에치엠은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각각 20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발행할 예정이다.
제주맥주는 지난해 매출 225억원, 영업손실 110억원을 냈다.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영업손실 규모가 100억원을 넘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3% 줄었다.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코스닥시장 상장 당시 2023년 매출 목표치를 1148억원, 영업이익은 219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실제 작년 매출은 예상치의 19.5%에 불과했다.
제주맥주는 작년 6월 ‘곰표’ 상표권을 소유한 대한제분과 손잡고 판매가 일시 중단됐던 ‘곰표밀맥주’를 재출시했다. 곰표밀맥주는 2020년 6월 첫 출시 이후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5800만 캔을 돌파한 스테디셀러다. 제주맥주 측은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하게 됐다”고 했지만, 실적 회복을 견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제주맥주는 작년 하반기 직원 40%가량을 감원하는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코로나19 시기 급성장한 수제 맥주 수요는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주 소비층이던 Z세대 음주 취향이 위스키와 하이볼 등으로 옮겨 간 데다 일본산 맥주의 공세까지 겹친 탓이다.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편의점 업체 A사의 수제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 급감했다. 작년 한 해 매출은 2022년보다 15.9% 줄었다. 수제 맥주 판매량이 줄자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제주맥주, 세븐브로이맥주 수제 맥주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중단했다.
제주맥주 경쟁사인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해 수십억원대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작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39억원이었다. 3분기 누적 매출은 1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2% 급감했다. 코스닥 상장을 준비했던 세븐브로이맥주는 실적 부진으로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난달 중소기업 전용 증권시장인 코넥스에 상장했다.
주류업계에서는 제주맥주의 회생 가능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 주체가 주류업체가 아닌 데다 자산 규모도 제주맥주에 비해 매우 작아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경영권 매각 소식에 이날 제주맥주 주가는 21.49% 내린 1180원에 마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