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정부가 시행 중인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에 올해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찬반 표 차가 8표에 불과한 데다 이날 함께 상정된 ‘진보당 지지 배제’ 안건을 놓고도 계파 간 극심한 이견이 표출되는 등 내부 갈등이 한층 심화하는 모양새다. ◆8표 차로 “회계공시 참여”18일 노동계에 따르면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총 제80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2024년 사업계획 안건 중 하나인 ‘회계공시 거부’의 건은 재적 1002명 중 찬성이 493표에 그쳐 부결됐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조 회계공시에 참여하게 됐다.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만 조합원이 낸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 조합원의 알권리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10월 처음 도입했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데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공시 참여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소속 공시 대상 노조 331개 중 312개(94.3%)가 공시에 참여 중이다.
올해도 참여가 예상됐으나 지난달 28일 조합원 18만3000명 규모의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대의원대회에서 회계공시 제도를 두고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 수단”이라며 참여 거부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금속노조는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에도 “노조의 자주성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불참을 압박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5일 정기 대의원대회에 올해 회계공시 거부 안건을 상정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대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면서 표결이 무산됐다.
이날 ‘회계공시 참여 거부’ 안건이 부결되면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회계공시를 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회계공시 거부를 선택한 금속노조와 그 산하 노조들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상급노조가 회계공시를 하지 않으면 지부·지회 등 산하 노조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회계공시 거부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금속노조 및 다른 계파들의 비판이 이어지면 민주노총 내부 갈등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진보당 지지’ 안건은 상정도 못해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진보당을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에 포함한다’는 취지의 안건이 함께 올라왔지만, 성원 부족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열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친자본 보수 양당 체제 타파를 위해 보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선 방침을 수립한 바 있다. 보수 양당이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다.
하지만 진보당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면서 “진보당을 지지하는 것도 민주노총의 총선 방침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양경수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총 내부 자주파(NL) 성향 정파인 전국회의는 “더불어민주연합은 일시적 연대”라며 진보당을 지지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은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양경수 집행부와 밀접한 관계다. 반면 현 민주노총 집행부에 비판적인 세력들은 진보당을 지지 정당에서 배제하라고 주장하면서 날 선 대립이 이어졌다.
이날 전국회의 측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노동당과 함께 진보당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총선 방침 수정안 상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안건은 대의원들의 외면에 찬반 표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