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한국이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담은 ‘글로벌 기업 아태지역 거점 유치 전략 보고서’와 함께 공동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자는 서한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암참이 이례적으로 이런 제안을 한 것은 그만큼 한국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중 분쟁에 따른 ‘차이나 엑소더스’로 글로벌 기업들이 홍콩과 상하이에 있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속속 옮기고 있지만 그 반사효과를 누리는 곳은 싱가포르와 일본이다. 특히 지난해 싱가포르에 새로 아시아 본부를 설치한 기업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제너럴모터스, 영국의 다이슨 등 4200여 사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아시아 본부 유치 사례는 손에 꼽을 만큼 미미하다.
암참은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행을 주저하는 요인으로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등을 들었다. 대부분 노동 관련 규제다. 당장 주 52시간제는 경쟁국인 싱가포르·일본·홍콩에 비해 지나치게 경직적이다. 주당 44시간이 기본인 싱가포르는 월 72시간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한국은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 분기 등으로 유연화하려는 계획도 ‘주 69시간’ 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경영자를 겨냥한 중대재해법,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글로벌 기업들에는 이해 불가 규제다. 해외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갈라파고스식 규제인 데다 법의 내용조차 모호하고 불투명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쟁국보다 높은 법인세를 낮추는 것도 필수다. 법인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만 내려도 외국인직접투자 순유입이 400억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의 장점은 일자리 창출 같은 경제적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무엇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첨단기술과 인력, 고효율 투자 집결로 우리 산업과 금융의 역량도 한 차원 높아질 게 분명하다. 그동안 국내 경제계의 숱한 건의와 바람이 무위에 그치자 이젠 외국계 기업들이 총대를 메는 현실이 안타깝고도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