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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 문제가 미국 경제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미 중앙은행(Fed)이 긴축적 통화 정책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범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학계 분석이 나왔다.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고용 시장 활황세가 유지되면서 미 경제에 고금리를 버텨낼 체력이 길러지고 있다는 얘기다.
13일 마켓워치에 따르면 중도 성향의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소속 이코노미스트인 웬디 에델버그와 타라 왓슨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이민 인구에 대한 미 의회예산국(CBO)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속 가능한 수준의 일자리 증가 폭이 월 6만~14만개였다. 통상 일자리가 늘면 인플레이션이 자극되는데, 이 정도 규모의 고용까지는 물가 상승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인구 고령화 속도를 반영한 고용 수준은 월 6만~10만개로 추산됐다.
그러나 지난해 이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미 고용 시장은 추가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고도 월 16만~23만개의 일자리를 흡수할 수 있었다. 올해에도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월 16만~2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이민 인구 증가는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을 0.1%포인트 높이고, 소비지출액과 개인소득(물가상승률 조정치)을 각각 730억달러, 760억달러 늘릴 수 있다는 게 이들 학자의 계산이다.
컨설팅업체 프론트하버매크로리서치의 제러드 맥도널 창립자는 이번 논문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잠재 GDP 증가율이 빨라지고 고용 시장의 속도 제한이 더 높게 설정된다면 최근의 성장률과 고용 강세는 덜 걱정스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신규 일자리 증가 폭은 지난 2월 27만5000개(전월 대비)로, 시장 전망(19만8000건)을 웃돌았다. 작년 12월 29만개, 올해 1월 22만9000개에 이어 강한 흐름이 유지됐다. 다만 실업률이 전월 대비 0.2%포인트 오른 3.9%로 집계되는 등 냉각 기류도 일부 감지됐다. 지난해 실질 GDP 증가율은 2.5%로, 전년(1.9%) 대비 강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CBO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순이민자를 구성하는 집단 중 ‘기타 비이민자’의 수가 2021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비이민자란 합법적으로 영주권을 획득했거나 임시 비자를 소지한 경우가 아닌 임시 체류민을 뜻한다. 미국에 영원히 체류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경제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인구다. 망명 등 목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따낸 100만명과 우크라이나, 아이티 등에서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가석방된 80만명 등이 포함된다.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3.1%)을 웃도는 3.2%(전년 동월 대비)로 발표되면서 금리 인하 시점을 가늠하고 있는 미 중앙은행(Fed)의 고민이 깊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넬대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물가 수준은 Fed에 불확실한 앞날을 예고한다”며 “미 경제는 지금껏 잘 버텨왔지만, 고물가와 이에 대한 Fed의 대응이 지속되면 ‘소프트랜딩’(연착륙) 전망이 ‘소프트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으로 바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