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세제 없으면 선박 다 떠난다"…한국은 5년마다 '일몰 전쟁'

입력 2024-03-13 16:04
수정 2024-03-13 16:13
“톤세제를 폐지하는 국가의 선주(船主)는 1년 안에 모두 그 나라를 떠날 겁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만난 네덜란드 왕립선주협회의 로데베이크 비세 세무법률담당이사(사진)는 “톤세제는 세계 해운업의 공정 경쟁을 위한 기본 제도”라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또 한 번 톤세제 일몰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톤세는 영업상 이익이 아닌 선박의 톤(t)수와 운항 일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톤세를 선택할 경우 업황이 좋으면 일반 법인세를 낼 때보다 이익이지만 불황일 땐 부담이 된다. 대부분 해운사는 납세의 예측가능성이 높은 톤세제를 많이 선택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선대의 89%가 톤세제로 세금을 냈다.

네덜란드는 현대적인 형태의 톤세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선박 확보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경기와 운임에 따라 변동성이 큰 해운업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했다. 네덜란드가 1996년 톤세제를 도입한 이후 노르웨이와 독일, 영국, 미국, 대만 등 20여 해운강국이 이를 따라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05년 톤세제를 도입했다. 이후 한국의 국적 선대 규모는 2005년 2686만t(858척)에서 2022년 9922만t(1665척)으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다만 한국의 톤세제는 5년 일몰 기한이 있는 조세상 특례여서 5년마다 연장해야 한다. 톤세제를 영구 제도가 아닌 일몰제로 도입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해운업계는 톤세제가 해운업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한다. 세계 무대에서 국적선사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톤세제는 기본 무기라는 얘기다. 비세 이사는 “톤세제는 각국 정부는 물론 유럽연합(EU)·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해운업에 필수적인 제도로 인정받았다”며 “톤세제를 없애면 그 국가에 등록돼 있던 선박들이 톤세제가 있는 다른 국가로 선적을 옮겨 해운 경쟁력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한국해운협회가 올 1월 한국 국적선사 160개사를 조사한 결과 이들 선사는 톤세제가 일몰될 경우 보유하고 있는 선대의 85%를 해외로 편의치적(선주가 선박을 제3국에 등록하는 것)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국적선대는 현재 1억?에서 1500만?으로 급감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외 선사는 톤세제와 편의치적선 두 가지 무기로 싸우는 형국에 편의치적선 혜택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이 톤세제마저 없앤다면 국내 선사들은 해외 기업들과 경쟁조차 해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5년마다 제도 일몰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를 비롯한 해운 선진국은 오히려 톤세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와 의회는 해상풍력 지원선, 풍력발전기 설치 선박, 준설선 등으로 톤세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벨기에, 노르웨이 등은 이미 시행 중이다. 영국도 내년부터 선박관리 산업까지 톤세 대상으로 포함시킬 방침이다.

비세 이사는 “톤세제는 국가의 해상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국가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톤세제로 선박에 대한 세수가 줄어들더라도 해운기업에 우호적인 세제 환경으로 연관 신사업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결국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으려면 톤세제가 안정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는 “수출입 화물 99.7%를 해상 운송하는 한국에 있어 해운업의 지원 필요성은 명약관화한 것”이라며 “해외 해운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톤세제를 영구적으로 운영해 해운사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로테르담=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