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1일(현지시간) 대중(對中) 견제를 보다 강화하는 내용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마련했다. 의회 승인 없이 대만에 미군 물자를 지원하는 예산을 처음으로 담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군사력 증강에 맞서는 국방 예산도 대규모로 편성했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는 국제 인프라 구축 예산도 신설했다.대만에 ‘우크라이나식’ 군수 지원미국 국방부는 이날 발표한 2025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예산안에 ‘대통령 사용 권한(PDA)’으로 대만에 5억달러(약 6550억원) 규모의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하는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PDA는 미군에 재고가 있는 물품을 제공하는 방식의 군수 지원이다. 미군 물자를 그대로 제공하기 때문에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만에 대한 PDA 지원 의사를 처음 밝혔다. 당시 3억4500만달러(약 4500억원) 규모 군수품을 대만에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이번에 5억달러로 늘렸다. 캐서린 힉스 국방부 부장관은 이날 “이번이 (PDA) 권한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 적은 있지만, PDA를 활용해 비축 무기를 제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태평양 억제력 이니셔티브(PDI)에 99억달러를 배정했다. PDI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중국 군사력 증강에 맞서 레이더, 위성, 미사일 시스템 등을 도입하는 예산 항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20년 22억달러 규모로 신설된 뒤 올해 역대 최대인 91억달러 규모로 늘었고 내년에도 8억달러가 증액될 전망이다. 내년도 예산에는 괌 방어 지원을 위한 탄도미사일 방어 활동, 훈련·교육·사이버 작전 기술 지원, 무인 시스템 배치 증가 등이 포함된다고 미 국방부는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인프라 구축 예산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도 이번 예산안에 반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인도와 중동, 유럽을 잇는 ‘경제 회랑’(교통·수송 인프라)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리처드 베르마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중국과의 경쟁에 향후 5년간 총 40억달러를 의무 지출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20억달러 예산을 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 국가와의 경제 파트너십 강화 등을 통한 ‘게임체인저’ 투자에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도 ‘2차 대중 무역전쟁’을 예고하며 중국과 각을 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CNBC 인터뷰에서 “중국은 지금 우리의 보스나 마찬가지다. 마치 우리가 중국의 자회사인 양 군다”며 대중 철강·자동차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밝혔다.법인·초고소득자 세율 인상이날 바이든 행정부는 부자 감세와 중산층 지원 확대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예산안도 공개했다.
백악관은 이날 1억달러 이상 자산가에게 미실현 자본이익을 포함한 소득세에 25% 최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법인세율은 21%에서 28%로, 법인세 최저세율은 15%에서 21%로 인상하기로 했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때 적용하는 세율도 1%에서 4%로 올린다.
서민·중산층을 겨냥한 재정 지원책도 쏟아냈다. 백악관은 2022년 만료된 자녀 세액공제 혜택을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부활시켜 빈곤 가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에는 연소득 20만달러 미만인 가정에 보육 서비스를 무료로 보장하고 저임금 근로자 1900만 명을 대상으로 근로소득세액공제(EITC)를 확대하는 방안도 담겼다. 전체 예산안 규모는 7조3000억달러(약 9500조원)로 전년 발표 대비 5.7% 증가했다.
이런 예산안이 원안대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원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예산안은 무모한 지출에 대한 행정부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와 민주당의 재정적 책임 무시를 상기해준다”고 비판했다.
김인엽/오현우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