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팅은 잔인하다. 스트로크 한 번의 결과가 미스 혹은 버디,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모래알 하나, 잔디 한 포기의 결에 따라서도 공의 방향이 바뀐다. 골프가 답답하고 변덕스러운 스포츠가 된 것은 퍼팅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퍼팅은 수많은 골퍼에게 가장 큰 고민으로 꼽힌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8)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퍼팅에 발목이 잡히면서 우승 행진이 멈췄다.
그랬던 셰플러가 11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특급대회인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총상금 2000만달러)에서 우승했다. 이전까지 쓰지 않던 말렛형 퍼터를 쥐고 자신의 약점으로 꼽히던 그린플레이까지 점령하자 아무도 그의 독주를 막아설 수 없었다. 1년간 우승 끊겼던 세계 1위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힐 골프앤드로지(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셰플러는 보기 없이 버디만 6개 쓸어 담으며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기록한 그는 2위 윈덤 클라크(31·미국)를 5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했다.
셰플러는 일관성 있고 견고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로 유명하다. 티에서 그린까지의 플레이에서 얻은 타수 이득은 PGA투어 내 1위다. 비거리, 아이언, 웨지샷을 모두 잘한다는 뜻이다. 지난 시즌 그린적중률과 평균타수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린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 퍼팅 부문은 투어 내 162위였다. 특히 짧은 거리 퍼팅에서 실수가 잦았다. 지난 시즌 총 17번이나 톱10에 들며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 경쟁에 나서면서도 우승하지 못한 것은 퍼팅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셰플러는 지난해 새로운 퍼팅 코치 필 캐니언과 손잡고 퍼팅감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는 그간 사용하던 블레이드형 퍼터를 버리고 말렛 퍼터를 쥐고 나왔다.
공교롭게도 3주 전 그의 경쟁자이자 동료인 세계랭킹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방송 인터뷰에서 “셰플러가 말렛 퍼터를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권했다. 매킬로이 역시 퍼팅으로 마음고생을 크게 한 선수로, 말렛 퍼터로 바꾼 뒤 안정감을 찾았던 자신의 경험에 비춰 조언을 건넨 것이다. 예민한 블레이드형은 감각적인 퍼팅을 구사하기에 좋다. 이에 비해 바닥과 접하는 면이 넓은 말렛형은 직진성과 관용성이 좋다. 셰플러는 “마침 퍼터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매킬로이의 조언이 있었다. 타이밍이 좀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말렛형 쥐자 ‘퍼팅 고수’ 변신새 무기를 쥔 셰플러는 그린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1번홀에서 6.5m 버디 퍼트를 잡아낸 그는 연달아 클러치 퍼트를 성공시켰다. 특히 15번홀에서는 17.5m짜리 버디 퍼트를 넣으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최종 라운드에서 셰플러는 7.5m 이내의 퍼트를 대부분 성공시켰다. 이번 대회 출전 선수 가운데 평균 퍼트 수 6위(27개), 그린 적중 시 홀당 퍼트 개수 1위(1.58개)에 올랐다. 셰플러와 우승 경쟁을 펼친 클라크는 “셰플러가 퍼팅까지 잘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가 매주 좋은 퍼팅을 시작한다면 정말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애정 어린 불평을 내놨다.
약 1년 만에 우승을 추가하며 투어 통산 7승을 기록한 셰플러는 “퍼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실력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라며 마음고생이 컸음을 내비쳤다. 퍼팅 난조를 불러온 것은 “완벽하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완벽한 골프라는 것은 없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전혀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번주 대회에서는 골프가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스포츠임을 받아들이면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역설을 만들어낸 셈이다.
안병훈은 4언더파 68타를 쳐 공동 8위(4언더파 284타)에 올랐다. 임성재는 2타를 잃고 공동 18위(2언더파 286타)를 기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