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 없다더니…" 보건복지부 '선처' 카드 또 만지작

입력 2024-03-11 14:31
수정 2024-03-11 14:32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또다시 선처 카드를 꺼냈다. 정부가 강경하게 나갔다가 반응이 없자 반복해 선처 카드를 꺼내며 복귀를 호소하는 모양새다.

조 장관은 11일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 출연해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지난달 29일로 복귀 시한을 잡았다가 지난 3일까지 복귀하면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미뤄주더니 반발이 여전하고 복귀 움직임도 없자 이런 입장을 전한 것이다.

전날 전국 20개 병원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파견하겠다고 발표한 조 장관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추가 투입도 고려하겠다"면서 "정부는 의료 현장이 안정될 때까지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면허정지 행정처분이 어떻게 진행됐느냐는 질문에 "사전 통지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상응한 처벌과 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행정 처분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전공의가 복귀하게 되면 그 전공의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를 할 예정이다"라며 "전공의분들께서는 빨리 현장으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지난 3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처분은 불가역적"이라고 했던 것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것.

조 장관은 또 전공의, 의대생들에 이어 집단행동을 할 조짐을 보이는 의대 교수들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교수님들마저 떠나면 어떻게 될지는 교수님들이 더 잘 알 것"이라며 "환자 안전을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라겠고, 정부도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겠다"고 했다.



앞서 4일 박 차관은 "의사단체에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며 "정부는 그간 의사의 반대에 가로막혀 개혁을 이룰 수 없었던 과거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굳어진 잘못된 인식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있기 때문에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전공의뿐만 아니라 의대생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에 정부와 대립해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자신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무나 대신할 수 없는 의료전문인력이기 때문에, 그동안 병원들이 파업으로 인해 진료 차질을 빚으면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던 선례가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라는 자신감이 이를 방증한다.



과거 2000년 의약분업 제도가 도입되면서 병원에서 약을 조제할 수 없게 되자 의사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집단휴진에 들어가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시했다.

의료수가 인상, 전공의 처우 개선 등과 함께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는데 합의했다.

2014년에는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했지만, 이에 반대한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선언하며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결국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을 때,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강행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즉시 총파업을 결정했으며, 전공의들은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그 결과 의료계와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의과대학 학생들이 의사 국가시험도 집단으로 거부했는데 "재응시는 불가하다"고 천명했던 정부는 국가고시 응시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