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분당 위기로까지 몰고 간 ‘비명(非明)횡사’ 공천이 논란 끝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총선 승패는 예단할 수 없지만 민주당의 주류 세력은 20년 만에 바뀌게 된다. 탄핵 역풍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해 당 주류로 군림해 온 친노·친문 중심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 출신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빈자리는 원외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이 채웠다. 핵심 친명 현역 의원들은 쇄신의 칼날을 모두 피했다. 민주당 텃밭에 골고루 배치된 이들이 22대 국회에서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방어와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열린캠프 출신과 ‘찐명’ 3인방민주당 현역 의원 중에는 “내가 친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대표를 잘 아는 인사들은 정성호(경기 동두천·양주·연천갑) 김병욱(경기 성남 분당을) 김영진(경기 수원병) 의원을 ‘진짜 친명’으로 꼽는다. 이들은 모두 일찌감치 단수 공천을 받았다.
정 의원은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노동법학회를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김병욱 의원은 이 대표가 성남에서 활동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김영진 의원은 이 대표의 중앙대 후배다. 세 사람 모두 ‘문재인 대세론’이 팽배하던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대표의 선거캠프에 참여했다. 한 관계자는 “변방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에 불과한 이 대표의 가능성만 믿고 함께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2021년 당내 대선 경선 때 이 대표의 열린캠프에 참여한 인사들도 친명 주류다. 열린캠프 참여 의원 54명 중 절반에 가까운 20명이 단수 공천을 받았다. 조정식(경기 시흥을) 박주민(서울 은평갑) 김병기(서울 동작갑)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역구 조정으로 경선을 치러야 하는 우원식 의원(서울 노원갑)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수 공천을 받았다.
당 관계자는 “연수원과 성남 시절부터 알았던 측근 3인방에 비해 열린캠프 인사들과의 친밀도 및 신뢰도는 다소 약할 수 있다”며 “이 대표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사실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객공천’ 경기도·성남시 인맥이번 공천 과정에서 이 대표의 성남시·경기도 핵심 인맥도 확실히 드러났다. 이들은 전국적 인지도가 낮아 전략·단수 공천 대신 당내 경선 기회를 얻는 정도로 배려받았다. 주로 비명 현역 의원에게 각을 세우는 ‘자객 공천’으로 투입됐다.
대표적 비명인 이원욱 개혁신당 의원의 경기 화성정에 투입된 진석범 후보는 성남시 사회복지사협회 회장 출신이다. 이 대표 특보를 맡고 있다. 모경종(인천 서구병), 윤용조(부산 해운대을) 후보는 당대표실에서 근무한 측근 그룹이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블라인드 채용’으로 영입한 모 후보는 이 대표의 수행비서를 했다. 그는 비명계 신동근 의원과 경선을 치른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윤 후보는 경기도 통일비서관과 평화대변인을 지냈다.
이 대표의 ‘기본주택’ 설계자라고 주장하는 이헌욱 후보(경기 용인정)도 이 대표와 끈끈하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설립한 주빌리은행(장기 부실채권 매입 후 채무 탕감)의 고문 변호사와 성남FC 감사를 지냈다.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도 했다. 2021년 대선 경선 때 이 대표의 성남 자택 옆집에 공사 합숙소를 임차하도록 해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민주당 가짜뉴스·댓글조작법률대책단의 모니터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드루킹 사건을 터뜨려 친문 구심점 김경수 전 경남지사 구속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경배 후보(전남 영암·무안·신안)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안태준 후보(경기 광주을)는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과 성남산업진흥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李 사법 대응’ 변호사 세력법조계 인물로는 ‘사법리스크 대응 드림팀’이 있다. 이 대표 사건을 직접 변호하거나, 이 대표 최측근인 정진상·김용 씨가 연루된 사건을 변호한 인사들이다. 검찰 출신인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광주 서구을), 박균택 전 광주고검장(광주 광산갑), 이건태 전 고양지청장(경기 부천병)과 조상호(서울 금천) 김기표(경기 부천을) 김동아(서울 서대문갑) 변호사,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박 전 고검장은 이 대표가 백현동 특혜 의혹 등으로 지난해 9월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 이 대표를 변호했다.
대부분 ‘이재명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강성 지지층을 파고든다는 특징이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법리스크의 실체를 꿰뚫고 있는 만큼 이들을 이 대표가 전적으로 신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옛 통합진보당의 주축이던 경기동부연합 세력은 ‘과격한 친명’이다. 이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시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학생·노동운동 출신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입을 꿈꿨지만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며 좌절됐다. 한총련 5기 의장 출신인 강위원 씨는 성추행 논란으로 출마를 포기했고, 한총련 산하 남총련 6기 총학생회장을 지낸 정의찬 씨는 과거 민간인 고문치사 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전력이 문제가 됐다. “이재명 중심 이익공동체”친명 세력은 성격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과거 동교동계, 상도동계, 운동권, 시민사회 세력 같은 정치적 운명 공동체와는 결이 다르다. 시대정신 아래 결집했다기보다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좇아 뭉친 이익집단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다양한 출신이 모인 느슨한 정치 연대”라고 평했다.
이 대표를 향한 충성도에 비해 국가 미래 비전은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친명의 상당수가 이 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윤석열 정부의 검찰권에 각을 세울 뿐 첨단 과학기술 발전, 저출생 대응, 연금개혁 같은 국가적인 사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걸 들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도덕성 면에서도 ‘내로남불’ 비판을 받는 운동권 주류보다 우월할 게 없다는 평가다. 성추행 의혹으로 출마를 포기한 강위원 씨는 물론 경기 성남중원 출마가 유력하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성희롱 발언으로 낙마했다. 이 대표 측근인 당대표실 출신 윤용조 전 부국장, 천경배 전 국장, 안태준 전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 모두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한재영/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