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1952년 발표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나라에서 1969년 초연했다. 40년 넘게 산울림 소극장에서 임영웅 연출로 2000회 이상 무대에 올려져 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나는 2009년 처음 이 작품을 봤고, 2015년 초연 45돌 기념 공연을 다시 봤다. 당시 블라디미르(디디) 역을 한명구, 에스트라공(고고) 역을 박상종, 포조 역을 이호성 배우가 맡았다. 6년 만에 다시 본 그 공연은 신기하게도 처음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당시에 나는 뭔가 힘든 일을 겪는 중이었는데 고고와 디디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에 내가 겹쳐 보이며 눈물이 핑 돌았던 것 같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런 작품이다.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된다.
이번 공연의 캐스팅은 신구, 박근형, 김학철, 박정자 배우였다. 이번 공연 역시 10년 전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그 집에서 혼자 지냈다. 연로해 몸이 예전 같지 않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 등급을 받아 요양 보호사님이 매일 집으로 와 살림을 도왔다. 거실과 방마다 카메라를 설치해 나는 수시로 휴대폰으로 아버지를 확인했다. 보호사님이 퇴근한 이후 화면 속의 아버지는 주로 멍하니 TV만 보고 있었다. 단기기억력이 급격히 안 좋아진 것은 작년부터였다.
고고(신구)는 점점 기억을 잃고 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고고는 곁에 있는 디디(박근형)에게 자꾸 말한다. “이제 그만 가자.” 디디가 고고에게 말한다. “가긴 어딜 가,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지.” 고고와 디디의 대화가 최근 나와 아버지의 대화와 얼마나 비슷한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떤 날은 아버지의 전화를 열몇 번 받는다.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한다. “아버지, 그거 어제 했잖아요.” “그게 어제였다고?” 디디도 고고에게 말한다. “어제 우리가 여기 왔었잖아, 저 나무를 보라고.”
베케트가 경도인지장애를 소재로 희곡을 쓰진 않았겠지만 요즘 아버지와 나의 대화 또한 한편의 부조리극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잘 듣지 못하고, 더러 맥락이 없다. 이번 작품에서 고고와 디디 역할을 노배우들이 맡으니 노년의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 몇 배 더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디디를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디디는 기억을 잃어가는 고고를 늘 다정하게 대한다. 어디선가 얻어맞고 오는 고고를 보면 우선 팔 벌려 안아준다. “이리와, 안아줄게.” 잠들 땐 어깨를 내주고 당근을 좋아하는 고고에게 당근을 준다. 나는 아버지에게 디디 같은 존재였을까? 언제부터인지 하염없이 같은 질문을 하는 아버지에게 성마른 대답과 짜증을 내고는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디디보다 이 연극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비슷했다. 곁을 안 주고 멀찌감치 서서 “고도씨는 오늘은 못 오지만 내일 꼭 오실 거예요”라고 실체 없는 위로와 격려만 반복했다.
2시간 반이 넘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관객들은 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원캐스팅으로 이 작품을 해낸 노배우들에게 나도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다. 연극은 끝났고 배우도 관객들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방에서 그만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이번 주말에도 아버지를 찾아가 말할 것이다. “내일은 고도가 꼭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