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학벌 중심 사회’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합격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엘리트 사회에서 학벌은 곧 계급을 의미했고, 그것에 따라 신분이 결정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벌 중심 사회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학벌이 오히려 창조와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반드시 멋진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온종일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미래 세대가 바라는 인재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질 인재의 조건은 무엇일까?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경제평론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評論家の父から息子への手紙)>라는 책은 미래 사회를 살아갈 인재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소개한다. 1958년생으로 자산운용 전문가이면서 경제평론가인 야마자키 하지메는 미래 세대에게 하고 싶은 솔직담백한 조언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한다. ‘돈과 인생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책에는 무려 열두 번의 이직을 거치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경험한 저자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쓴 ‘어른의 조언’이 펼쳐진다.
직업을 고르는 방법,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인재의 조건, 투자와 자산 관리, 인맥 관리, 시간 관리, 이직 고민, 행복의 조건, 그리고 적절한 결혼 상대 고르는 법과 술 마시는 법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고민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이어간다. 대학에 합격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투병 생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가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올해 1월 1일 식도암으로 별세했다.
“쇼와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상식은 지금 세대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단다.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슷한 정장 차림과 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대부분 직장인은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일 뿐이지. 평생 약자의 입장으로 직장인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단다. ‘정직원’이라는 지위를 얻은 것에 안심할 수 있겠지만, 부모 세대와 지금 세대는 너무 다르단다. 일하는 방식, 돈 버는 방식 모두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거라.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와 정반대로 사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단다.” 저자는 일과 직업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현재의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에 만족하면서 그저 그냥 지내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자기 자신을 반면교사 삼아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대목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기의 비결은 ‘무조건 듣는 것’이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인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다 보면 자기 자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은 결코 상대에게 호감을 얻을 수 없어. 아무리 스펙이 좋은 사람도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단다”라고 전하며, 사실은 저자 자신도 젊은 시절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른이라고 무조건 꼰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