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빠졌더니 '900억' 증발…햇반, 결국 '中 알리'로 간다 [하헌형의 드라이브스루]

입력 2024-03-08 15:57
수정 2024-03-08 16:40

CJ제일제당이 지난 7일 중국 e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에 입점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제조사가 새로운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식품·유통업계에선 “쿠팡 납품 중단으로 ‘햇반’ 등 주력 제품의 매출 성장이 꺾인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뷰티, 물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배달 등 분야에서 갈등을 빚어 온 CJ그룹과 쿠팡 간 대립도 격해질 조짐이다.

8일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외 햇반 매출은 8503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였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22년(18.5%)의 4분의 1 수준인 4.3%에 그쳤다. 2022년 1272억원이던 매출 증가액이 1년 새 70% 넘게 급감했다. 2021년 매출 증가율은 23%였다. 작년 같은 추세라면 CJ제일제당이 애초 목표로 했던 ‘2025년 매출 1조원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햇반의 매출 성장 둔화는 쿠팡 ‘로켓배송’(익일 배송)이 중단된 것과 무관치 않다. CJ제일제당은 납품가 갈등으로 2022년 11월 쿠팡에서 햇반, ‘비비고’ 등 일부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해 네이버, 신세계그룹, 컬리 등과 손잡고 온라인 판매망을 확대했지만, 탈(脫)쿠팡에 따른 매출 감소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는 과거 햇반 연간 매출의 10% 수준인 900억~1000억원가량이 쿠팡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CJ제일제당 자사 몰인 CJ더마켓에서 올린 매출(238억원)의 3배가 넘는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쿠팡 로켓배송을 통한 햇반 판매가 다른 온라인 유통 채널보다 수익성이 높다”고 했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 측은 “식품 사업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쿠팡 납품 중단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했다.

업계에선 제로(0) 판매 수수료 정책 등을 통해 한국 업체 제품을 초저가로 판매하는 알리에 햇반이 입점하면서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알리는 CJ제일제당 제품을 최대 55% 싸게 판매 중이다. CJ제일제당은 알리에 입점시키는 상품 종류와 물량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이 쿠팡과 거래를 재개하는 대신 국내 e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알리와 손잡으면서 CJ그룹과 쿠팡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질 전망이다. 햇반 납품 단가 문제로 시작된 CJ와 쿠팡의 갈등은 쿠팡이 작년 7월 “중소 뷰티업체의 e커머스 입점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CJ올리브영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 고조됐다. 같은 해 9월 CJ제일제당이 쿠팡 자회사 쿠팡이츠의 경쟁사인 배달의민족과 손잡으면서 대립 전선이 더 넓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 입장에선 알리 입점으로 반(反)쿠팡 연대를 또다시 확장한 CJ가 달가울 리 없다”며 “CJ제일제당의 쿠팡 재입점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