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안 샀는데 10만원 훌쩍 넘더라"…서민들 뿔났다

입력 2024-03-10 17:27
수정 2024-03-10 18:54

#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설 연휴를 앞두고 큰집의 차례상 장보기에 나섰다가 오른 식재료 가격에 깜짝 놀랐다. 그는 "평소에는 간편식 위주로 구입해 몰랐는데 식용유와 밀가루 등을 오랜만에 구입하니 가격이 훌쩍 올랐더라"며 "고기를 구입하지 않아도 장바구니 결제액이 10만원이 훌쩍 넘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식료품물가 상승 움직임이 이어진 가운데 소비자 사이 식품사들이 최근 국제 곡물가 하락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는 밀가루 원재료인 소맥과 식용유 원재료인 대두유 가격이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했다며 식품사가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촉구했다. 협의회는 녹색소비자연대 등 10여 개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다.

협의회에 따르면 대두유(1.8L 기준) 가격은 2022년 1분기 2952원10전에서 같은해 3분기 4394원30전으로 48.9% 뛰었으나 이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3분기에는 2698원80전으로 떨어졌고, 같은해 4분기에도 2888원60전으로 2021년 평균(2634원50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밀가루 원재료인 소맥분 역시 유사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소맥분 1kg 가격은 2022년 1분기 497원80전에서 같은해 4분기 630원60전으로 28.5% 상승했으나 지난해 4분기 435원10전으로 하락했다.


다만 시중에서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은 최근 2년 사이 좀처럼 하락세로 돌아서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곰표 밀가루 중력다목적용(이하 100g당) 가격은 지난달 198원으로 2022년 2월(151원)보다 31.1% 올랐다. 이는 최근 1년 사이 12.5% 상승한 가격이다. 백설 찰밀가루는 2년 사이 4.1% 오른 249원으로 올랐으나 1년 사이에는 2.0% 하락했다.

식용유의 경우 오뚜기 콩기름(이하 100mL 기준)과 해표 맑고 신선한 식용유, 백설 콩기름은 각각 2년간 22.4%, 11.4%, 21.4%씩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공식품 물가지수(117.55)는 전년보다 6.8% 상승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의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주요 식품사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한 후 일부 동결·인하 사례가 있었으나 원재료 가격 하락분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협의회 측 주장이다. 가격 인상 대신 가격을 유지할 경우 제품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등 방법을 쓴 점도 지적했다.

주요 식품사들이 지난해 전년보다 뚜렷하게 이익이 개선된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수출 호조와 환율분 등을 고려해도 원재료 가격 부담이 줄어들면서 이익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풀무원은 영업이익이 전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고, 농심과 롯데웰푸드 역시 영업이익이 각각 89.1%, 57.5% 급증했다. 동원F&B, 오뚜기 역시 영업이익이 20~30%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협의회는 "지난해 주요 식품사들이 가공식품 물가를 급등시키고 슈링크플레이션 등 꼼수 전략으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했다"면서 "밀가루, 식용유를 포함한 주요 식품 기업들은 하락한 원재료 가격을 즉시 출고가와 소비자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기업들이 한 번 올린 소비자가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짧은 기간 유례없이 올린 식품 가격을 반드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역시 식품업계에 가격 인하 신호를 주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원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식품사가) 가격을 인상했다면 (원료 가격) 하락 시에는 제때 하락분만큼 제대로 내려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경영활동”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식품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의 압박 속 꾸준히 가격 상승분을 미반영한데다 전방위적인 가격 상승 요인이 여전하다는 점을 토로한다. 일례로 설탕 원료인 원당 등은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인건비 부담 등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일부 원재료 가격이 최고점 당시보다 하락했지만 평년에 비해선 여전히 비싼 수준이고, 국제유가 등 흐름을 고려하면 올해도 (원재료 수급 동향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