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직장인 박모씨는 퇴근 후 학생으로 돌아간다. 부동산 인터넷 강의를 듣고 주말이면 수강생들과 함께 지역 부동산 임장(현장답사)을 나간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부동산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재테크 서적을 읽는다. 퇴근 후 자기 계발에 쏟는 시간을 늘리면서 매일 있던 저녁 약속도 주 1회 수준으로 줄었다.
박씨가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그전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재테크가 눈에 들어왔다"며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이대로 월급만 받아서는 평생 내 집 마련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전히 집값이 비싸긴 하지만, 하락장에는 한 번쯤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며 "계속 전·월세를 전전하고 싶진 않다.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 종잣돈을 모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높아진 서울 집값에 2030세대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독립을 미룬 채 부모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을 선택하거나 독립하더라도 경기·인천으로 밀려나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독립해 서울에서 살려면 비싼 월세를 내고 오피스텔이나 원룸으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 생판 타인과 함께 사는 공유주거를 택하기도 한다.
집값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030세대 청년들이 무작정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향할 수도 없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비수도권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는 지역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고, 49.4%는 거주 지역이 향후 소멸할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41.1%는 지역의 열악한 일자리 여건(47.4%)을 이유로 수도권 이주를 희망했다.
실제 지방에서는 매년 적지 않은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1만1432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는데, 절대 다수인 1만1226명은 수도권으로 향했다. 9017명이 순유출된 광주에서도 5438명은 수도권으로 옮겼다. 대구는 7711명이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인구가 5288명 순감했다. 서울 집값이 비싸면 지방으로 가서 살라며 청년들의 등을 떠밀 수도 없는 것이다.
일자리 때문이라도 서울에 머물러야 하는 청년들은 스터디나 소셜 모임을 통해 부동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했던 팀 활동과 비슷한데다 또래 취미 모임 플랫폼에 대한 경험도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스터디를 구하는 채널도 다양해졌다. '프립', '소모임' 등 취미 모임을 구하는 플랫폼에서도 함께 공부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함께 미션을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전·월세 생활은 지겨워"…하락장 대비하는 청년들지난해부터 부동산 스터디를 시작했다는 6년 차 직장인 김모씨는 "장년층이 많은 기존 투자 모임은 이미 자산을 쌓아둔 이들이 많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며 "비슷한 또래가 모이는 직장인 스터디는 각자 자산 사정도 비슷하기에 공감도 많이 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서 각자 자산을 쌓고 집을 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더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권 내 집 마련을 목표로 돈을 모으는 또래를 보며 김씨도 종잣돈 마련에 팔을 걷게 됐다. 김씨는 "예전에는 여행도 많이 하고 필요 없는 물건도 사며 인생을 즐겼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돈을 아끼게 됐다"며 "어렵더라도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소모임을 운영하는 한 모임 장은 "지난해 하순부터 30대뿐 아니라 20대 가입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집값이 하염없이 오르던 시기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플렉스, 욜로(YOLO)를 외쳤던 20대도 집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집값이 하락으로 돌아섰는데, 이번 하락장이 내 집 마련의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시장은 장기적으로 등락을 반복하는 만큼 하락기가 내 집 마련의 적기라는 판단이 깔렸다.
전문가들은 2030 청년들의 변화가 불안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취업은 어렵고, 소득은 적고, 집값은 오르는 경제 환경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단으로 치닫자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신해 현재에 집중하자는 욜로가 인기를 끌었지만, 코로나 시기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커지다 보니 미래를 대비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공부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한때 2030세대에게 코인이나 주식 투자도 인기를 끌었지만, 급락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부동산은 가격이 내려가도 본인이 살 집은 남는다는 차이에 청년들이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와는 자산 등의 여건이 다르고, 청년들은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기에 부동산 스터디도 또래 모임 위주인 것도 당연하다"고 설명했다.스터디·특강 다니며 공부…"영끌족보다 영리하게"부동산에 관심을 두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40~60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의 부동산 투자 강연에도 30대 직장인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3~4년 전만 하더라도 부동산 강의는 대부분 은퇴한 50~60대가 들었고 30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도 "지난해부터 30대 직장인이 부동산 강의 수강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청년층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달 신세계아카데미 강남점에서 진행된 부동산 경매 강연에서도 곳곳에서 퇴근 후 참여한 직장인 수강생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수강생은 "요즘 집값이 내려갔다고 하지만 손에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며 "그래도 살 집은 있어야지 싶어 경매를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다른 수강생은 "월급만 보면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게 월급만 모아 집을 사려니 무리하게 대출받아 영끌족이 되고, 이자가 늘어나면 모두들 쓰러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잣돈을 경매와 갭투자로 불리고, 무리한 대출 없이 서울에 전용 59㎡ 아파트를 낙찰받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고 교수는 중장년층에 비해 자산이 적은 2030세대 직장인은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 교수는 "마음만 앞서 재개발 빌라 같이 저렴한 비아파트에 투자하려는 청년들이 있다"며 "비아파트는 갭투자를 하면서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다음 매수자를 구하기도 만만치 않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자산에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은 투자를 하다 다소 문제가 생겨도 버틸 수 있지만, 자산이 적은 청년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파도가 될 수 있다.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