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둔 돈을 지난해 상반기 엔비디아에 넣었거든요. 가격이 이미 오른 시점에 넣었는데도 150% 먹었어요." (금융위원회 직원)
"운용사로 이직하니 투자를 아예 막아놨더라고요. 해외주식만 된다길래 일본 증시에 투자했는데 대박났죠." (자산운용사 임원)
'국내 주식 투자' 제한을 받는 금융기관 직원들은 요즘 표정이 밝습니다. 해외 증시에서 신통한 성적을 거둔 이들이 많아서 인데요. 엄격한 규제로 인해 새우등 터질까 싶었던 직원들이 오히려 수익률을 챙기고 있는 겁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63조에서는 금융당국이나 증권사·운용사에 다니는 임직원들의 주식 투자를 상당부분 막고 있습니다. 금융투자 상품을 사고팔 경우에는 소속 기관에 신고한 자기 명의의 계좌만 이용해야 하고 매매거래 내역도 분기별·월별로 보고해야 하죠. 업무상 알게 된 미공개 중요정보를 악용할 수 있는 만큼 아예 '국내 주식에 투자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워둔 곳도 많습니다.
너무 빡빡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강한 규제는 이런저런 사건·사고들로 강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어느 회사 주식을 사들이거나 주가를 조작해 시세를 조종한 뒤 거액을 챙겨받는 운용사와 자문사 사례들이 발생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유명 증권사 소속 한 애널리스트가 차명으로 미리 사둔 주식을 추천하는 리포트를 발간하는 등의 사건들도 규제 강화의 배경입니다.
당국은 금융 종사자들의 선행매매나 시세조종 등 행위를 엄정 단속하고 있습니다. 증권·운용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의 불공정거래는 투자자 신뢰를 깎고 직업군의 직업윤리에도 위배된다는 판단에섭니다.
반복되는 사고에 금융회사와 유관기관들은 내부 지침을 만들어 직원들을 단속하고 있습니다. 회사 마다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대체로 국내 주식 투자는 세게 옥죄고 해외 주식과 가상자산에 대해선 열어두고 있습니다.
일단 2019년 이후 불공정거래 사고가 많았던 하나증권의 경우 국내 주식 투자를 아예 막고 해외 알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해외 주식 전담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맡은 종목은 매수할 수 없고요.
그렇지만 강도가 세긴 해도 국내 주식 투자가 가능한 회사가 더 많습니다. DB금융투자의 경우 자신이 커버하는 섹터를 제외하고는 애널리스트도 국내 주식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가 삼성전자를 사모을 수 있다는 겁니다. 유안타증권의 경우 센터에서 매수 보고서를 낸 종목은 24시간 동안 사고팔 수 없고 일주일간은 팔 수 없게 했습니다.
NH투자증권도 국내 주식 투자가 가능하지만 애널리스트 자신뿐 아니라 소속 팀의 커버리지(분석 대상) 종목까지도 매매가 제한된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또 회사에서 리포트가 나온 날 기준으로 5거래일간은 팔 수 없으며, 실적발표 등 리포트 발간 예정인 종목도 살 수 없습니다.
운용사들의 경우에는 투자대상을 직접 선별해 투자하는 '바이사이드'여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데요. 회사가 보유 중인 종목을 펀드매니저 개인이 매매할 수 없는 데다, 개인이 이미 갖고 있는 종목을 회사가 매수할 경우에는 회사가 매도하기 전까지 팔 수 없는 식입니다. 다만 대부분 펀드 매니저들이 해외 주식과 ETF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투자 제한이 심하다보니 특히 금융회사에서는 동기부여를 느끼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직접적인 시장 참여자인데도 내 돈 못 불리는 게 억울하다'는 불만에서요. 국내 주식 투자 규제가 덜한 회사로 이직하는 애널리스트의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금융 당국 공무원들은 압박이 더한 상황입니다. 금융위 한 직원은 "5급까지는 신고를 하고 주식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제한사항이 많아 사실상 국내 주식에 아무도 관심 없다"며 "4급부터는 3000만원이 넘으면 매각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코인도 금융정보분석원(FIU)이나 금융혁신과 등 유관 부서의 경우 일절 투자할 수 없도록 돼있습니다.
정규거래소인 한국거래소의 경우에도 해마다 원천징수상 연봉의 50% 금액까지 거래할 수 있습니다. 매매 횟수도 매월 20회로 제한되며, 분기별로 거래내역 등을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미국과 일본 증시가 잘 나가다보니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얼결에 짭짤한 수익을 맛보는 중입니다. 연초 이후 미 S&P500 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는 각각 9%, 19%가량 상승할 동안 코스피지수는 되레 약 1% 밀렸는데요.
최근 만난 금융위 한 부서 사무관은 "눈 뜨고 있는 동안 계좌 안 들여다봐도 되고 일어나면 가격이 올라있다"며 "국내 주식 투자를 금지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한 증권사 스몰캡 담당 애널리스트도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가 50가지는 되는 것 같다. 안 되는 이유들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며 "맘 편히 해외 주식에 돈을 넣었는데 수익률이 가파르게 오르니 차라리 이게 낫다 싶다"고 밝혔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