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기 자금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지난달 국내 증시가 반등에 성공하자 개미들이 실탄을 채우기 시작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57조8852억원을 기록했다. 1월 2일(59조4949억원) 후 최대 수준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매도한 뒤 찾지 않은 돈으로 주식 시장에서 ‘대기성 자금’으로 불린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증가 추세다. 4일 기준 개인투자자의 CMA 잔액은 67조823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70조원을 넘어섰다가 올해 초 63조원대로 줄었는데 최근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다. CMA는 고객의 돈을 증권사가 단기투자상품에 투자한 뒤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해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분류된다. 예탁금과 CMA 잔액을 합하면 증시 주변 대기 자금은 126조원에 육박한다. ○투자자 예탁금 58조원 올 최고 수준
전문가들은 주가지수가 반등에 성공하자 여유 자금이 증시 주변으로 옮겨왔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코스피지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로 5.82% 오르는 데 성공했다. 2월 상승률로는 2005년 후 최고 수준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말 2200선에서 지난달 2600대 후반까지 빠르게 오른 것이 직접적 배경”이라며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진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은 아직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가파르게 오른 증시가 이달 들어 숨 고르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코스피지수는 5일과 6일 각각 0.93%, 0.30% 하락하면서 고점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지 못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초 증시를 주도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 다음의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 시장도 지수가 크게 오르다 보니 투자자들이 선뜻 매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밸류업 모멘텀 지속될 가능성이처럼 증시 주변 자금이 갈피를 못 잡은 상황이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달 국내 증시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가치주를 중심으로 지수가 상승했다면 당분간 소외된 업종을 중심으로 순환매 장세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목을 받는 업종은 반도체와 유틸리티, 조선 분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 반도체 생산과 출하는 각각 44.1%, 62.1% 늘어나며 본격적인 업황 반등에 나서고 있다. 유틸리티 업종의 경우 최근 3개월 사이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이 202.7% 증가하며 전체 업종 가운데 실적 개선 폭이 가장 가파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은 뚜렷한 실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선업도 12개월 선행 EPS가 상승 반전한 만큼 비중을 높일 만하다”고 내다봤다.
밸류업 모멘텀이 3월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외국인 투자자 자금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이후 이날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136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정책당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관련 정책이 중장기 모멘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효/전효성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