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목소리는 가장 아름다운 악기지만, (동시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다.”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로 불리는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남긴 말이다. 그의 얘기처럼 목소리만큼 변형이 자유롭고, 인간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세계 정상 자리에 오르기 더없이 까다로운 악기는 과거에도, 지금도 없다. 유리알이 굴러가듯 청아한 음색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부터 분노와 배신감에 차서 울부짖는 소리까지 ‘성악(聲樂)의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 작곡가들의 음악적 영감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연광철, 선우예권과 듀오 리사이틀성악이 조화로운 음향과 광활한 에너지로 압도하는 오케스트라, 화려한 기교와 개성 있는 해석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독주와 함께 오랜 기간 클래식 음악의 한 축을 이뤄온 이유다. 국내에서 성악의 진가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이달이 기회다. ‘신이 내린 목소리’로 불리는 소프라노 조수미(62)를 비롯해 ‘현존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 통하는 베이스 연광철(59), ‘세계 3대 바리톤’으로 꼽히는 미국의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69) 등 거물급 성악가의 무대가 줄줄이 이어져서다.
베이스 연광철이 첫 테이프를 끊는다.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린 연광철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성악가다. 1996년부터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00회 넘는 공연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2018년 독일어권 성악가의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카머쟁어) 칭호를 받았다.
2019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지휘한 취임 공연에서 베이스로 선택한 인물도 바로 연광철이었다. 연광철은 이번 공연에서 ‘올(all) 슈만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슈만이 독일 낭만주의 문호 하이네의 시 가운데 16편을 추려내 선율을 붙인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가곡 ‘내 고뇌의 아름다운 요람’ ‘나의 장미’ ‘헌정’ 등을 들려준다. KBS교향악단 무대 서는 조수미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은 28일(예술의전당)과 29일(롯데콘서트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영국의 브린 터펠과 함께 ‘세계 3대 바리톤’으로 불리는 햄프슨은 국제적 권위의 오페라 극장에서 80여 배역을 소화해온 거장이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은 무려 170여 장에 달한다. 그라모폰상, 에디슨상 등 유명 음악상을 휩쓴 그는 현재 하이델베르크대 명예교수이자 런던 왕립음악원 명예회원, 하이델베르크 리트아카데미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지휘봉을 잡는 이번 공연에서 햄프슨은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을 조명한다. 1960년대 ‘말러 붐’을 이끈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솔리스트로 따로 기용했을 만큼 말러 작품 해석에 탁월한 햄프슨은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라인강의 전설’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울리는 곳’ ‘원광’ ‘기상나팔’ ‘북 치는 소년’ 등 다섯 곡을 부른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KBS교향악단의 800회 정기연주회를 빛낸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다. 1986년 이탈리아 명문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주역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그의 노래를 듣고 “신이 내린 목소리다. 그녀는 인류의 자산이다”라는 극찬을 남긴 건 유명한 일화다.
조수미는 성악계 최고 영예인 ‘황금 기러기상’(1993)과 비(非)이탈리아인 최초로 ‘국제 푸치상’(2008)을 들어 올린 데 이어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전당’(2021)에 헌액된 소프라노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이 이끄는 이번 공연 ‘로마의 축제’에서 조수미는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 도니체티 오페라 ‘연대의 딸’ 중 ‘모두가 알고 있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아, 그대였던가’ 등을 들려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