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 상당수가 제시한 시한까지 복귀하지 않자 행정처분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총괄조정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대본 회의에서 "어제 미복귀한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였고, 이들에 대해서 추후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이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대규모 면허정지 등 행정·사법 처벌 압박에도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50개 수련병원 현장점검을 통해 미복귀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행정처분 절차를 시작했다. 현재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전공의는 지난달 29일 기준 7854명이다. 일부 복귀 인원을 제외하면 이번 행정처분을 받는 전공의들은 약 7000명에 이른다.
상당수 전공의가 정부의 엄포에도 꼼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 취득하면 사실상 평생을 가는 의사면허가 가진 위력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해석이다.
과거 2000년 의약분업 파동 시 집단폐업과 휴업을 주도한 김재정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판결 받고 2006년 의사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그는 3년 후 면허를 재취득했다. 이 밖에도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당정 협의를 거쳐 2022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 늘리고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주축으로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휴진율이 60%에 달하자 정부는 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전협은 회원들에게 휴대전화를 끄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라며 ‘블랙아웃’(Blackout) 행동 지침으로 강하게 맞섰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 주도로 의대생도 수업과 실습을 거부하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힘을 보탰다. 의대생 대다수가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는 바람에 시험이 한차례 연기됐다. 이후 정부는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을 구제하기 위해 의료법 시행령까지 개정하며 시험 기회를 추가로 부여해야 했다.
이한경 본부장은 "이틀째 수련병원 현장 점검을 통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위반 사실확인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본은 전날 7000명에 대한 미복귀 증거를 확보했고, 추후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이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오는 6일까지 현장검증 및 채증을 진행하고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를 보낼 예정이다. 이어 전공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지난달 16일부터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전공의는 100개 수련병원 소속 9438명, 복귀하지 않아 불이행 확인서가 징구된 사례는 7854명에 달한다. 정부는 불이행확인서를 받고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3개월 이상의 면허정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정부가 수천 명의 의사면허를 정지하는 것은 처음인 데다 최종 처분까지 수 주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집단행동의 핵심인 각 대학병원 전공의 대표 등이 우선 처분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1일 각 대학병원 전공의 대표 등 13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공시 송달해 행정처분이나 사법 조치를 위한 요건을 갖춘 상태다.
전공의에게 3개월의 면허정지는 어떤 의미일까. 전공의는 의대를 졸업한 후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단계의 의사다. 인턴·레지던트가 전공의에게 해당하는데, 전공과목에 따라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간 수련병원에서 교수(전문의)의 지도하에 의술을 배운다. 그런데 전공의에게 3개월간 의사면허가 정지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는 3개월이 아닌, 1년간 늦춰진다. 3개월만 놓쳐도 전공의 수련 기간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또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전공의에겐 행정처분 이력과 그 사유가 기록되는데, 이것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향후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설명이다.
취소된 면허가 '부활할 기회'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2019년만 해도 의사 면허 재교부 비율은 100%였다. 하지만 범죄자가 버젓이 의사로 근무하는 데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재교부 심사 구조가 강화됐다.
면허가 한 번 취소된 의료인은 취소 사유에 따라 적게는 1년간, 길게는 10년간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없다. 만약 이번에 면허가 취소된 전공의 등 의사가 재교부를 신청하더라도 '집단행동으로 인한 면허 취소'가 사유인 경우, 재교부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의사들 사이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의새 챌린지’가 유행이다. 이들은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지난달 19일 브리핑에서 의도적으로 ‘의사’를 ‘의새’로 들리도록 발음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역으로 밈(Meme·유행성 장난) 콘텐츠로 퍼트리는 등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지난 3일 SNS에 남긴 글을 통해 "소아과 선생님 중 한 분은 이런 나라에 더 이상 살기 싫다며 용접을 배우고 있다"고 전해 직업을 바꿀지언정 정부 방침에 굽힐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한편 전국 40개 의대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로 총 3401명을 신청했다. 작년 2847명보다도 554명 늘어난 수치다. 동맹휴학과 전공의 대규모 사직도 증원 신청을 막지 못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분명한 건, 4일까지만 의대 정원 신청을 받고 추가 접수는 안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대학들이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증원 신청을 한 배경에는 이번 정책 시행을 둘러싼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