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속설이 뒤집혔고 여론조사에서 속내를 숨기는 유권자를 가려내야 한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미국 경제가 호조를 나타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으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청년들로부터 점차 외면받고 있다.
사라진 ‘샤이 트럼프’기존 대선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여론조사 때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면서 ‘현직 프리미엄’을 없앴다. 열광적인 지지자가 넘쳐나면서 ‘샤이(shy) 트럼프’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트럼프에 대한 높은 관심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 빅데이터 컨설팅 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공동 분석한 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주당 게시판에 최근 1개월간 올라온 글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관련 내용이 등장한 비중은 각각 58 대 100이었다. 회원 수가 107만 명인 공화당 게시판에서 두 후보가 언급된 비중(67 대 100)보다 격차가 더 컸다.
오차범위 내인 지지율 차이와도 대조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이달 초까지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평균 45.8%의 지지율을 얻었다. 바이든의 평균 지지율은 43.0%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위협적이고 두려운 대상으로 생각했다. 트럼프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차기 대통령직(presidency)과 지지자(supporter), 동맹 위협 등이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사무실에만 있거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nothing)로 간주했다. 대선 최대 쟁점 된 경제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유권자들은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레딧의 민주당 게시판에서 경제 관련 내용은 전체 글의 19.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법(17.7%), 전쟁(11.7%), 낙태(11.3%), 권위주의(9.2%), 이민(5.7%) 순이었다. 공화당 게시판은 경제 관련 글이 25.4%로 더 많았다. 전쟁이 19.4%로 2위였고 이민(17.2%), 사법(9.6%), 낙태(4.8%)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경제 문제에서 생계에 집중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경제 구조나 분배에 관심이 많았다.
바이든은 인플레이션을 빠르게 낮추지 못하면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다. 미국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1% 오르며 시장 추정치(2.9%)를 웃돌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물가를 제대로 잡고 있다고 한 응답자 비중은 37%에 그쳤다. 그 결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던 젊은 층이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이하 연령층의 63%가 바이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같은 답변을 한 전체 연령층 평균(59%)을 웃돌았다.
CBS가 같은 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의 정책이 ‘물가를 상승시킬 것’(55%)이란 답변이 ‘물가를 하락시킬 것’(17%)이란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이탈한 민주당 지지층이 변수
부동층의 향배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27일 민주당의 미시간 프라이머리에선 ‘지지 후보 없음’ 비율이 13.2%에 달했다. 바이든의 지지율(81.1%)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바이든이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자 아랍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바이든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지지 의사 철회 형태로 표출한 것으로 해석됐다.
공화당은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지지자들의 향배가 주목된다. 헤일리 지지층의 30~40%가 트럼프에 반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과 트럼프에게 실망한 지지자들이 경쟁 후보로 옮겨가거나 투표 포기, 제3 후보 지지 등의 형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