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인 2020년 이후 유통사들은 경쟁적으로 기업 쇼핑에 나섰다. 사람들의 돈 쓰는 방식이 급격히 바뀌자 엄청난 위기감을 느낀 영향이었다. 온라인 쇼핑의 부상, 소비 양극화, 극단적인 가성비 제품 선호 현상 등 다양한 소비 트렌드 변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기업 인수합병(M&A)은 이런 트렌드 변화에 올라타거나 아예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지금 M&A에 나섰던 유통사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M&A가 큰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는 탓이다. M&A 후유증에 시달려롯데가 극명한 사례다.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은 2022년 편의점 미니스톱을 약 3300억원에 인수했다. 코리아세븐은 CU와 GS25 양강 체제에 밀린 ‘만년 3위’로 편의점 시장 내 입지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업태 중 성장률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인수 배경이었다. 하지만 편의점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 10%를 넘은 CU, GS25의 매출 증가율은 5% 안팎으로 반토막 났다. 코로나19 상황에선 사람들이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 많이 갔지만 최근엔 대형마트와 슈퍼 등으로 분산된 영향이다. 미니스톱 영업권은 인수 당시 인수자금의 60%가량인 200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하지만 작년 1~3분기 상각한 644억원을 제하고도 약 1400억원의 추가 상각 가능성이 있다.
현대백화점은 유통이 아니라 제조업으로 사업 확장을 꾀하다 어려워진 경우다. 2022년 현대백화점은 침대 매트리스 제조사 지누스 지분 38.1%를 8790억원에 인수했다.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또 아마존 등 온라인에서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프리미엄(영업권)을 많이 얹어줬다. 인수 시점에 장부상 영업권만 6000억원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누스 실적은 2022년이 정점이었다. 지난해 지누스의 매출은 17%, 영업이익은 72% 급감했다. 과잉 재고, 미국 시장 판매량 감소 등 악재가 겹쳤다. 현대백화점이 작년 지누스의 영업권 상각액을 2022년(201억원) 대비 두 배인 403억원으로 늘린 이유다.
신세계 이마트는 G마켓의 영업권 상각이 뼈아프다. 이마트는 2021년 G마켓 인수 후 온라인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2022년 655억원, 지난해엔 3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애초 G마켓은 이익을 잘 내는 회사였다. 감사보고서가 마지막으로 제출된 2018년엔 매출 약 9800억원에 4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마트가 인수하고 나서 달라졌다. 온라인 시장의 경쟁 구도가 계속 바뀐 탓에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선 쿠팡이 치고 올라왔고, 이후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G마켓의 입지를 흔들었다. 한때 국내 온라인 쇼핑 1위이던 G마켓은 쿠팡, 네이버쇼핑, 알리 등에 밀려 4~5위권으로 내려앉았다. 기업 신용·주가에 큰 악재영업권 상각, 지분 평가손실이 현금 유출을 의미하진 않는다. 장부상 손실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간단치 않다. 기업 신용 저해가 가장 크다. 신용평가사들은 작년 말 이마트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주된 이유는 영업권 상각 등으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회사채 발행, 신규 대출 등에 제한이 생긴다. 주가에도 부정적이다. 기관과 외국인은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의 지표를 많이 참조한다. 이 지표의 기준이 장부에 반영된 가치다.
컬리, 무신사 등 e커머스 기업이 추진하는 상장 및 매각 작업은 전면 중단됐다. 잠재 인수자인 유통 공룡들의 자금 동원 여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한때 3조~4조원으로 평가받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최근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 무신사의 장외시장 기업가치도 2조원 안팎으로 작년 7월(약 3조원) 대비 1조원가량 쪼그라들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