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대신 강아지 키우는 한국…"내 새끼인데 최고로 해줘야죠" [슬기로운 반려생활 ①]

입력 2024-03-04 07:00
수정 2024-03-05 09:58



"제가 먹는 과자보다 몇 배 비싸지만 어떻게 해요. 내 새끼 먹이는 데 최고로 먹여야죠."
최근 경기 하남스타필드 펫숍에서 만난 60대 여성 A씨가 반려견을 위한 간식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한 말이다. 평일 낮 찾은 이곳에 쇼핑객들의 행렬은 줄을 이었다. 반려동물 가방은 최소 9만원에서 최대 23만원에 달한다. 한 봉지에 2만원을 훌쩍 넘는 간식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데도 반려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려견과 홀로 매장을 찾은 30대 여성 B씨는 "반려견을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 가족한테 받는 사랑이나 위안보다 내 아이(반려견)에게 받는 게 더 크다"고 했다.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끼리 '누가 더 아이한테 잘 해 주나' 비교하는 심리가 있어요. 아이 건강이나 미용에 관해서는 다른 아이보다 꿀리지 않게 해주려고 합니다."

한국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가족과 관련 시장의 증가세는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 최악의 출산률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연구대상으로 떠오른 것과 정반대되는 흐름이다. 일각에선 "조만간 아이를 키우는 가정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개모차(개를 태우는 유모차)가 유모차보다 많이 팔리기 시작한 게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려가정의 급속한 확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책을 마련해야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0년 간 3배 폭증한 韓 펫 산업
4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팻케어 시장은 전년 대비 5.6% 증가한 24억5030만 달러(한화 약 3조2529억원)로 집계됐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3배 불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펫케어 시장이 1.9배 커진 것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빠른 속도다.

한국의 펫케어 시장은 세계 14위 수준으로 경제 규모에 비해 아직 크지는 않지만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가뜩이나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진전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펫 시장 성장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당시 재택근무 보편화되고 반려동물을 키울 여건이 좋아지면서 반려동물 보급률이 증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20년 이후 한국의 펫산업 성장률은 연 평균 10%이상으로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축"이라고 했다. 건강·미용 중심으로 급성장
이런 흐름에 맞춰 반려산업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전국에서 영업 중인 반려동물 관련 업체만 지난 2월 말 기준 4만곳을 훌쩍 넘어섰다. 이 중 약국과 미용업은 매년 그 수가 크게 늘면서 최근 각각 1만 곳 안팎에 달했다.

동물약국은 전국에 1만1154곳으로 반려동물 업체 중 가장 많았다. 이는 전국적으로 2만4910곳이 영업 중인 일반약국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2020년부터 매년 약 2000곳이 새롭게 동물 약국 허가를 받고 있다. 일반 약국 개설자 중 동물 약국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수의사 처방에 따라 동물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동물미용업체가 9610곳으로 동물 약국 다음으로 많았다. 2017년까진 1년에 20곳 미만이던 동물미용업체 인허가 수는 2018년에 갑자기 약 5000곳으로 폭증한 후 매해 1000개가 넘는 업체들이 새롭게 문을 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전까지는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동물 약국이나 미용업체가 많이 생겨났다면, 최근에는 수요가 증가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펫케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또다른 이유로는 온라인 유통 시장이 활성화한 게 꼽힌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온라인 펫 시장 비중은 유독 높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펫케어 시장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7.5%로 주요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 56.4%, 미국 38.4%, 일본 23.0% 등으로 한국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한국 리서치 총괄은 "반려동물에 대한 진심 어린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사료 시장 외에도 고급 펫 가전, 용품, 영양제 등 펫 산업의 질적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가족이 된 반려동물
이러한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의 배경에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현상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사람처럼 대하면서, 반려동물에게 좋은 용품과 질 좋은 서비스 등에 아낌없이 지출하는 주인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타인에게 반려동물 양육을 '추천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오히려 감소(2021년 46.5%→2023년 41.9%)했는데, 이는 반려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가족을 키우는 데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뭐든지 최고로 해주려는 심리가 반영되면서 한국 반려동물 주인들은 고가 펫케어 품목에 많은 돈을 들인다. 지난해 한국의 고가 반려견·반려묘 건조 푸드 시장은 10년 전 대비 각각 150.0%, 577.6% 증가했다. 이는 전세계 성장률(각각 127.4%, 145.6%)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반려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에 따른 문화 충돌도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에게 수십만 원에서 수백 만원에 달하는 명품 의류를 입히고 오마카세를 먹이는가 하면, 장례식에서 조의금을 받는 사례에 거부감을 느끼는 비(非) 반려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도적 차원에서 풀어야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특히 반려가정에 보유세를 거둬야하는 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현재 미국, 유럽 상당수 국가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시민 안전, 동물 권리, 유기견 방지 등을 이유로 반려견을 중심으로 보유세를 걷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동물복지종합계획를 발표하면서 관련 논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정치적 부담 등의 요인으로 수그러들었다. 오승규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세연구실 연구위원은 2022년 9월 '반려동물세 도입 논의 필요성' 보고서를 통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그에 따른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과세는 반려견에 대한 과세로 시작하고 지방세로 과세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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