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린다. 평소라면 따분한 일이다. 잔잔한 바다에서 배의 키를 돌리는 선장과 같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모두 중앙은행을 쳐다본다. 긴박한 가운데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미국 중앙은행(Fed)을 다룬 책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 상황으로 따지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세계 최초로 양적완화(QE)를 시행한 것도 2001년의 일본은행이었다. <침몰하는 일본은행?>은 1996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은행의 행적을 다룬 책이다. 지지통신사와 TBS 등에서 경제부 기자로 일한 니시노 도모히코가 썼다.
일본은행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책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재집권과 함께 일본은행을 이끈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선임 전 재무성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물가상승률 2%와 그 달성 기한을 명시하라고 총리께서 말해 곤란한 상황입니다.”
구로다는 명쾌하게 답했다. “좋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이어 “2년이면 돼요. 2년이라고 명기하고 실행하는 거예요. 그만한 정신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합이 잘 맞았던 아베 총리와 구로다 총재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그의 지나친 과감함에 처음엔 일본은행 내에서 “형편없는 총재가 왔다”며 불만이 컸다. 하지만 핵심인 일본은행 기획라인은 “우리에게는 게임 체인저가 필요했다”며 내심 환영했다.
구로다 총재가 ‘관청형 리더’였기에 그에 대한 은행 내 불만은 점차 누그러졌다. 금융정책을 제외한 조직, 인사, 혹은 일본은행의 권한 확장에 대해서도 구로다 총재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일명 ‘바주카포’로 불린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물가가 오르는 듯했지만 중국과 유럽 경제가 침체하고 있었다.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린 것도 소비심리에 타격을 가했다.
국채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마이너스 금리 정책 등을 쓰던 일본은행은 단기 금리뿐 아니라 장기 금리까지 관리하는 ‘수익률 곡선 제어’라는 방안을 세계 최초로 꺼내 들었다. 물론 그 후에도 2% 물가상승률은 달성하지 못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기간 일본은행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잘 정리돼 있다. 소설을 읽는 듯 ‘이야기’로서도 뛰어난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