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최소 1000건 이상 콜(운송 요청)이 떠야 하는데 200건도 안 올라와요. 새벽부터 나오는데 허탕 치고 들어가는 날이 많아요.”
28일 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한 화물트럭 차주는 “중국으로 넘어가던 중간재 같은 물동량이 요즘 뚝 끊겼다”며 “새해 들어 분위기가 더 꺾인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시화산단을 가로지르는 정왕천 인근 대로변에는 중장비 차량, 대형 컨테이너가 길게 늘어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소재·부품산업을 이끄는 ‘중소제조업의 산실’이란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활력을 잃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출이자 연 7%…생존 한계”
중소기업들은 최근 경기 불황의 이유로 고금리를 꼽았다. 시화산단에서 산업기계 장비를 제조하는 K사 대표는 “금리가 오르면서 설비투자가 위축돼 작년에 주문량이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김창수 시흥소부장협회 이사는 “소재 업체들의 유통량 단위부터 크게 줄어들면서 절단, 가공, 표면처리 등의 공정이 연쇄적으로 쪼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평균 연 2.97%이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지난해 연 5.32%로 치솟았다.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연 5%를 넘은 것은 2013년 3월(5.02%) 이후 10년 만이다.
산단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 시화산단 내 D컨설팅 관계자는 “2년 전 3.3㎡당 1100만원까지 올랐던 1653㎡(약 500평)짜리 공장 매매가격이 800만원으로 떨어졌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작년 12월 공장 매매·임대 플래카드를 60개 내걸었는데 지난달까지 단 한 통의 문의 전화도 없었다”고 했다. 체감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박스포장업계도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용인의 W사는 월평균 매출(3억원)의 4%인 1200만원을 대출이자로 낸다. 인건비, 원자재 가격까지 올라 영업이익은 꿈도 못 꾼다. 법인 파산·회생 건수는 지난해 각각 1657건, 1024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中 공세·규제에 경쟁력 잃어제조업 경쟁력 자체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게 지금 위기의 본질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방위로 파고드는 중국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는 데다 노동·환경 규제가 제조업의 활력을 꺾고 있어서다. 인천 남동공단의 D도금은 발주처가 차량용 알루미늄 부품을 값싼 중국산으로 대체하면서 관련 매출이 90% 감소했다. 이 회사 대표는 “전후방 산업의 부품이 들락날락하는 도금업계가 움츠러들고 있다는 건 국내 제조업이 지금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얘기”라고 우려했다. 김기봉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중국이 동남아시아나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확장하며 훨씬 촘촘하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뿌리산업인 주물업계도 수도권에서만 지난해 6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김포 양촌산업단지의 B사 대표는 “거래처인 중견기업이 인건비 부담에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겨 매달 3000만원 정도의 고정 주문이 끊겼다”고 허탈해했다. 제조업 생태계 말단인 영세 소공인의 냉기는 훨씬 심각하다. 조성기 시흥소상공인연합회 대표는 “택시기사, 용달차 기사 등 투잡을 뛰는 기업인도 있다”고 말했다.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중국 공세는 십여 년 전부터 예고된 악재인데도 치밀한 대응 전략은커녕 각종 규제를 남발해왔다는 점에서 현재의 위기는 누적된 정부의 실패”라며 “지금이라도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성을 높일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시흥·김포=이정선 중기선임기자/최형창/김동주 기자 leeway@hankyung.com